매일신문

[이남교의 일본어 源流 산책](43)싹쓸이와 '사그리'

일본으로 건너간 최초의 도래인들에 의해 기본적인 언어가 성립된 후에 건너간 신도래인들의 말 역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어간만 남고 어미는 토착어로 바뀌면서 강한 의미를 갖게 되는데, 그런 말들은 현대에 어떤 형태로 남아있는지 알아보자.

먼저 싸움을 걸 때 쓰는 말인 '덤비다'는 일본으로 건너가 접두어 '이'라는 투구를 얻어쓰고 '이도무(挑む)'가 되어 '도전한다'로 강해지는데, 한국말의 '덤비다'는 주먹싸움을 연상하고, 일본말의 '이도무'는 칼을 빼는 결전을 연상케 한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싸움 방식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개 싸움을 하면 욕으로 시작해서 기껏해야 주먹이 왔다갔다하는 정도인데, 이런 싸움이 법정까지 이어졌을 때도 이유야 어떻든 누가 먼저 손을 댔나가 처벌의 경중을 좌우한다. 그러나 일본의 싸움은 그야말로 생과 사의 갈림길을 오가며 그냥 시시하게 끝나는 법은 없다. 그야말로 끝장을 내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의 잘잘못을 가리는 맞다, 틀리다의 '맞다구'도 일본으로 건너가면 좀더 강해져서 '맞타쿠'(まったく)로 되는데, '완전히, 전적으로, 아주, 정말'이란 뜻이다. 고추도 일본고추가 매운데 아마 바다를 건너가면 말도 이렇게 매워지는 모양이다.

'사그리'는 경상도 방언으로 '싹그리'란 말이며, '싹까지 전부 긁어'라는 뜻인데, 오늘날의 '싹긁어'하고도 상통하는 말이다. 이와 유사한 말로는 '깡그리'라는 말이 있는데, 이런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란 '전부'라는 뜻이다. 그리고 '싹쓸이'하면 한국사람이면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대중적 속어인데, 이 말 역시 '사그리'에서 발전된 말이다.

'싹쓸이'라는 용어는 화투의 고스톱에서 쓰는 말로, 바닥에 깔려있는 화투장을 몽땅 가져온다는 것으로, 21세기 해피 한국인들이 영어에서 따온 신조어이다.

국민 오락처럼 된 화투의 고스톱! 한국인이면 누구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즐기는 놀이인데, 이 화투의 원산지가 정작 일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웬일인지 일본에서는 이 화투가 '도박'이라고 경원시하여 깡패 등이나 약간 할 정도로 씨가 말랐는데, 어째서 한국은 그토록 좋아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오차와 사쿠라'는 한국이 원산지이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고추와 화투'는 일본에서 건너갔으니, 아마 기후풍토가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어쨌든 이 '사그리'라는 말은 일본으로 건너가 '솟구리'(そっくり)가 되는데, 그 뜻은 '전부, 몽땅, 모조리'라는 말이며, '그대로, 꼭 닮은'이란 뜻으로도 쓰인다.

경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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