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소리 주인공]동대구역 안내방송 이지영씨

명확한 발음과 템포, 목소리 톤 조절이 생명

특정 장소에 가면 늘 마주치는 목소리가 있다. 특정 시간대 어김없이 들려오는 목소리도 있다. 우울한 날에는 듣는 것만으로도 생기를 가져다 주고 이방인에게는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하는 고마운 존재다. 적당한 템포와 강도, 또렷한 발음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늘 우리 곁을 지켜주는 친근한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찾아 보았다.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11시10분 서울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타는 곳 10번에 도착했습니다. 11시10분 서울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하시는 고객께서는 타는 곳 10번으로 가셔서 승차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하루 평균 5만명 이상이 오가는 대구의 관문 동대구역에 가면 흔히 듣는 안내방송이다. 부드러우면서도 또렷하게 파고 드는 목소리 주인공을 찾아 동대구역 방송실 문을 두드렸다. 3~4평 남짓한 방송실에는 방송 장비와 함께 승강장 구석 구석을 볼 수 있는 CCTV 모니터 등 각종 기기가 빼곡히 자리잡고 있었다. 모두 방송에 필요한 장비들이다. 열차 도착과 출발 뿐 아니라 돌발 상황 발생시 안내 방송을 하기 위해서는 역 상황을 꿰뚫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대구역에서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방송실에는 6명이 3조로 나눠 2교대로 일하고 있다. 주간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야간조는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근무한다. 방송실 근무도 순환이 원칙이다. 통상 3년을 기준으로 순환 근무를 시킨다.

이지영(30)씨는 방송실에 들어온 지 3개월 된 새내기다. 2005년 코레일에 입사한 뒤 줄곧 매표소에서 근무하다 최근 방송실로 자리를 옮겼다. 매표소 근무 당시 친절한 응대와 호감 가는 목소리가 방송실 근무 계기가 됐다.

이씨의 일과는 빠듯하다. 열차 1대가 역으로 들어오면 도착, 개표, 승차 등을 알리는 방송이 평균 5번 이뤄진다. 주말의 경우 하루 평균 300대 이상 열차가 들어오는 것을 감안하면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올해 동대구역에 철도자동안내방송시스템(KOBOS)이 도입되면서 사정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바쁘다. 금연'유실물 방송, 열차 도착을 알리는 일부 방송은 녹음된 목소리를 사용하지만 출발과 개표, 돌발 상황 등은 직접 방송을 한다. 짧게는 1, 2분 단위로 계속 방송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잠시라도 입에서 마이크를 뗄 수 없다. 방송을 하면서 열차 도착과 개표 상황을 알리는 자막도 내보내야 한다. 두시간 방송을 한 뒤 같은 조 동료에게 마이크를 건네면 다음 방송 때까지 개표소로 가서 고객들을 안내하는 일을 한다.

또 전문 방송요원이 아니기 때문에 틈틈이 연습도 해야한다. "정확한 정보 전달이 생명인 안내방송의 경우 명확한 발음,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는 속도, 적당한 목소리 톤 조절 등이 필수입니다. 방송실 발령을 받은 뒤 방송 매뉴얼을 보며 입에 붙을 때까지 연습을 했습니다. 지금도 수시로 보고 연습을 합니다.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 보기도 하고 같이 근무하는 동료와 서로의 목소리를 모니터링 해주기도 합니다. 수원에 있는 코레일 인재개발원에 입소해 방송교육도 받습니다."

이씨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방송 전 멘트를 직접 적어본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법. 분실물 방송을 많이 하는 까닭에 미아 찾는 방송을 하면서 '아이를 분실하신 분'이라는 표현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한 것. 바로 사과 방송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기억이다. 목소리가 생명인 만큼 목관리에도 신경 써야 한다. 특히 요즘 신종플루가 유행하고 있어 유난히 조심스럽다. 그래서 방송 중간 중간 수시로 따뜻한 물을 마시는 것은 기본이다.

처음 해보는 방송일이 만만치 않지만 보람도 있다. 간혹 목소리의 주인공이 궁금해서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 최근에는 멀쑥하게 생긴 남자 대학생이 방송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씨는 "젊은 사람들은 알아서 열차를 잘 탑승하지만 어르신들에게는 방송이 꼭 필요합니다. 승강장을 착각해 잘못 된 곳에 서 있다 방송을 듣고 기차를 올바르게 타는 승객들의 모습을 볼 때 뿌듯함을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 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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