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를 어떻게 하느냐가 핫이슈가 됐다. 세종시 논란의 여파가 향후 권력 구도로까지 이어지면서 여야의 논쟁보다 여권 내부의 갈등과 알력이 더 관심사가 되고 있다. 세종시가 어디쯤 붙은지조차 아리송한 경상도 사람들이야 남의 집 불 구경하듯 하지만 출신지와 정치적 배경이 대구경북인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을 정점으로 한 이른바 친이 친박 의원들은 여차하면 갈라설 사람처럼 자극적인 말을 주고받는다.
정부 부처를 옮기는 원안을 찬성하는 쪽이든 수정해야 한다는 편이든 저마다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중앙부처 공무원이 서울로 퇴근한 후의 밤은 유령도시가 될 뿐이며 행정의 효율은 떨어지고 비용은 많이 든다는 수정론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정책의 신뢰성을 위해 국민과의 약속은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주장 역시 지극히 타당한 말씀이다.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던 소신을 접고 선거 기간과 그 이후 약속을 한 이 대통령이 조만간 어떤 수정안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그러나 세종시 문제의 본질은 세종시의 향후 청사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과 돈을 위시한 대한민국 모든 것의 중심인 서울의 무게 추를 지방으로 분산하자는 국가균형발전이 핵심이다. 그럼에도 지금 논쟁의 흐름을 보면 신도시의 미래상을 놓고 벌이는 정치적 경쟁이 정책의 본질인 국가균형발전을 뒷전으로 몰아낸 양상이다. 정책은 오류가 발견되면 언제라도 수정해야 하고 시대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은 쉽게 허물거나 무시해선 안 되는 문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를 1년 남긴 시절 안동에서 국가균형발전 보고회를 가진 적이 있다. 마무리 말에 나선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관계장관을 모아 놓고 해도 되는 보고회를 멀고 외진 안동에서 하는 이유를 "주민들의 도움을 청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균형발전 정책의 전략과 역량을 지방의 주민들에게 인수 인계하려고 한다. (국가 균형발전정책에 대한 저항을 감안할 때) 지방 사람들이 완전히 굳혀놓지 않으면 한 발 더 나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 여러분에게 SOS를 치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에 사람들이 몰리면 안동에 아버지를 두고 안동에서 학교를 나온 안동 출신은 서울에서 국회의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국회에서 어떤 결정이 나온다고 생각하느냐. 서울에서 커서 서울에서 밥 먹고 밤이면 서울에서 오페라를 보는 장관들이 지방에 관해 무엇을 알겠느냐. 대통령이 되고 내놓은 정책 중에 5년 안에 끝나는 것은 3분의 1도 안 된다. 집행되고 성과를 보려면 20년, 30년 걸리는 사업이 많고 균형발전사업은 특히 그렇다"는 말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말이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완전히 어긋난 말도 아니다. 농촌에 아이들이 사라지고 노인들만 남게 된다면 그의 말은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서울을 벗어나면 모두 시골로 여기는 서울 사람들의 눈에 내일의 주인공인 젊은 사람이 빠져나간 지방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세종시 문제는 정치인과 공무원, 서울 사람과 충청도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다. 경상도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다. 세종시 논란의 진행 여하에 따라 공공기관 이전이 예고된 지방의 혁신도시는 온전한 모습을 지켜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종시의 수정안이 나올 때까지 소모적인 논란을 중단하자는 제안은 검토할 만하다. 그러나 대안이 나오길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때늦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서울로 집중되는 오늘의 한국에서 지방의 살 길은 소통과 화합에 있다. 서울과의 소통만이 아니라 지방끼리의 소통과 화합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시와 도시 간의 경쟁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사는 동네가 아니라고 외면하고 남의 마을 이익은 시기하고 질투하다간 금방 내 문제로 다가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서울과 중앙정부가 무엇을 해 주겠지라며 기다리기만 하고서는 지방의 활로가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무엇을 하겠다는 노력이 필요하다. 효율이 강조되는 시대 대구의 오늘은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다른 지방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찾아갈 시간이다.
徐泳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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