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우울증 간에는 묘한 인연이 있다. 가계 대대로 내려온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었던 비글호의 선장 로버트 핏츠로이는 동승할 박물학자로 찰스 다윈을 고용했다. 당시 영국 해군의 탐사선에는 경험 많은 외과 의사를 동승시키도록 되어 있었으나 다윈이 선택된 것은 순전히 선장의 우울증 때문이었다. 오랜 항해에 지친 자신을 위로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핏츠로이는 명문가의 후예로 촉망받는 젊은 장교였지만 우울증은 항상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세련된 교양과 진실함을 지닌 다윈은 선장의 말벗이 되었고, 다윈 자신에게는 박물학 자료를 수집하는 기회가 되었다. 핏츠로이는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이 심해질 때면 항해 지휘권을 부하에게 위임하기도 했다. 1860년 다윈의 진화론을 대변하는 헉슬리와 그것을 반격하는 윌버포스 주교 간의 팽팽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을 때 선장이 보인 엉뚱한 행동도 우울증 때문이었다. 그리고 5년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처럼 자살에 이르는 심각한 우울증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우울한 기분을 경험한다. 우울한 기분이 지속적이고 정도가 심할 때 우울증이라고 한다. 우울증은 감기처럼 흔하지만 감기처럼 가볍게 여길 질환은 아니다.
우울한 기분은 왜 생기는 걸까? 모든 정신 현상과 마찬가지로 우울을 일으키는 원인도 여러 가지다. 애지중지하던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아픔, 간절히 바라던 바를 이루지 못했을 때의 실패감 등이 유발요인이 될 수 있다. 뇌졸중이나 외상으로 인한 두부 손상과 같은 직접적인 뇌손상과 더불어 핏츠로이처럼 유전적인 배경도 중요한 원인이다.
신경전달물질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세로토닌과 노르아드레날린이 문제이다. 우울증 환자들의 뇌에서는 이 물질들의 활동이 저하돼 있다. 세로토닌을 운반하는 회로는 봉선핵에서 시작하여 대뇌 피질 전체로 퍼져 나간다. 이것은 특히 우울증 환자에서 나타나는 충동적인 자살사고와 관련이 있다. 노르아드레날린 회로는 뇌교의 청반에 있는 신경체에서 시작하여 기나긴 축삭을 지나 대뇌 피질에서 축삭종말을 뻗어 다른 신경세포에 기분과 관계되는 자극을 전달한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많은 약물들은 세로토닌과 노르아드레날린의 작용을 북돋우는 기능을 하며 약물마다 관장하는 주요 신경전달물질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
우울증은 마음의 상처로 생기는 병이라기보다는 '마음으로 겪는 병'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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