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 김창숙(1879~1962)은 성주군 대가면 사월리 의성 김씨 집성촌에서 영남 유림의 후손으로 태어나 1962년 여든셋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고스란히 겪으며 흐트러짐 없이 지조와 절개를 지킨 항일 애국지사이면서 반독재 민주투사였다.
1919년 한국 독립을 호소하는 진정서를 작성,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우편으로 보낸 이른바 제1차 유림단 사건인 '파리장서 사건'을 주도했다.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 고문으로 두다리를 쓸 수 없는 불구의 몸으로 평생 앉은뱅이로 살았다. 1945년 해방 후에는 임시정부 국무위원, 성균관대 초대학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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