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인원이 많지 않았을 때는 이름까지는 아니더라도 얼굴은 충분히 익힌다. 그런데 아주 낯선 비구니 스님 한분이 한국불교대학 15기 출신이라며 소개한다.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 비구니 스님이 보현회에 들어와 봉사한단다. 14, 5년 세월의 강을 건너고 머리카락 스타일이며 복장까지 바뀌었으니 모를 법도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서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생에서 만난 인연도 이러할진대 저 생에서, 저 먼 생에서 만났다면 어떻게 알아볼 수 있으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과거 인연으로 재차 만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비구니 스님의 경우라면 최소한 전생에서 한번, 이생의 불교대학에서 한번, 다시 스님이 돼서 또 한번 만나고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일인가! 우리 삶의 마디마디에서 시어(詩語)가 쏟아질 만한 충분한 이유들이 지천으로 깔렸다.'
우학 스님은 그래서 이 '명상일기'를 썼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인생의 마디마디에 물방울처럼 맺혀 있는 인연들이다. 마디마디마다 물방울처럼 시가 맺혀 있고, 스님은 그 물방울을 조심스럽게 거두어 이 책에 담은 것이다.
'생면부지의 신도로부터/ 포도 맏물이 보내졌다/ 선한 소 눈보다 커/ 알 한 송이가 작은 목탁만 하다/ 먹을 자격이 있나 싶어/ 뜸들이다가/ 조간신문 뒤적이는 척/ 큰 글자 따라 가는 중에/ 한 알 한 알 입에 까 넣었다/ 아뿔싸! 부지불식간에 거의 다 해치웠다/ 타성에 취해서/ 금방 뻔뻔스러워진/ 자신에 놀란다. (하략)-타성- 중에서
'일요일에만 서는/ 저잣거리를 살핀다/ 안 사주면 미안하고/ 그렇다고 다 사줄 수도 없다/(하략)'
안 사 줄 수도 없고, 다 사 줄 수도 없고, 그러다가 몇 가지 물건을 집었으리라. 그 짧은 순간에도 인연이 닿았을 것이다. 인연은 그래서 질기고 무섭고 또한 오묘하다. 상/하 각권 223쪽, 각권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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