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막바지에 이르면 마무리해야 할 것도 많고, 새해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특히 2010년 내년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해여서 꼭 기억하고 준비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바로 6.25전쟁과 한일합방입니다. 내년이면 6.25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해이고, 한일합방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아직도 이 두 경험은 생각만하면 치가 떨리고 가슴이 쓰립니다. 그래서 더욱 더 이 치욕스러운 기억을 새기고 또 새겨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인지상정이 통하지 않는 것이 국제사회라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시 조선은 입도선매(立稻先賣)를 해야 할 만큼 궁핍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조선을 도와주기는 고사하고 주변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마치 토끼 사냥을 하듯 궁지에 몰았습니다. 결국 일본이 독식해버리자 헛물을 켠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을 끌어들여 일본을 태평양전쟁으로 유인했고, 일본 패망과 동시에 한반도를 다시 남북한으로 찢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백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사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6자회담이라는 평화의 탈을 썼지만 사냥꾼 무리는 그대로입니다. 더군다나 당시 보잘 것 없던 한반도는 한강의 기적 후 가장 통통하고 먹기 좋은 사냥감으로 변했습니다. 더 심한 쟁탈전이 펼쳐지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러한 한반도의 처지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팔자일까요? 과연 주변 강국의 인장력 때문에 조금만 긴장의 끈을 늦추어도 갈래갈래 찢길 것 같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를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 고구려와 발해의 시기를 보십시오. 대륙의 중심이었습니다. 장보고를 보십시오. 해양의 중심이었습니다. 동시에 이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매개체였습니다. 짧은 역사 시기를 빼 놓고는 한반도는 늘 중심이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경험과 상황을 가진 지역이 바로 중앙아시아입니다. 마노에이지 교수의 『교양인을 위한 중앙아시아』(책과함께, 2009)는 훌륭한 안내서입니다. 내용을 보면, 중앙아시아는 소련의 하부 구조로 있다가 냉전이 끝난 후 겨우 독립한 초라한 약소 국가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 중앙아시아는 중국의 신강 위구르 자치구와 티베트 자치구, 내몽골 자치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몽골까지를 포괄하는 공간입니다. 단순히 실크로드가 있는 동서 문물의 교류지로만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광활한 사막과 고산준령이 자리한 자연환경에서 독자적인 정치와 역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십만 명이 거주하는 오아시스 지역에는 각종 종교와 문화가 번창했고 이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습니다. 오아시스와 오아시스를 연결하는 육상교통로를 따라 각종 문물과 정보가 이동했기 때문에 최신 정보와 기술, 재화가 넘쳐났습니다. 초원과 산간지대에서도 유목민들이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동은 때로 몽골제국이나 티무르제국과 같은 강력한 제국의 형태로 나타나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8~19세기에 동으로부터 청조, 북으로부터 러시아의 압력에 노출되면서 중앙아시아의 슬픈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청조는 중국 전역을 통일한 후, 몽골, 티베트로 영토를 확장한 후에 타림분지 전역을 점령하였으며, 1759년에는 동투르키스탄을 점령하고 신강(新疆)이라는 이름으로 청조의 영토에 편입시켰습니다. 러시아 역시 시베리아 정복을 완료하고 진로를 남으로 바꾸어 중앙아시아를 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카자흐 초원에 요새를 세우고 편입시키더니 우즈베크계의 세 개 왕조인 부하라 아미르국, 히바 칸국, 코칸드 칸국을 차례로 점령하였고, 1881년에 유목 투르크멘을 굴복시켜 중앙아시아 정복을 완료하였습니다. 지금의 중앙아시아가 동투르크스탄에 해당하는 중국령 중앙아시아와 서투르크스탄에 해당하는 러시아령 중앙아시아로 분리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돌고 도는 것이 역사라고들 합니다. 우리도, 중앙아시아도 원래 하나인 모습으로 돌아가 '잘 사는 중심'이 될 날을 기약해 봅니다.
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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