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에 의성을 떠나 서울에 올라와 초·중·고를 다녔지만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 의성군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광운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와 입법고시를 염두에 둔 것은 고향에 내려가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몇차례 응시한 고시와 인연이 닿지 않자 변영복(46) 보건의료연구원 사무국장은 1992년 신한국당 사무처 공채 2기로 정치권에 발을 내디뎠다.
그 때부터 정치권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18대 국회에도 한나라당 등 정당 사무처출신 국회의원이 5, 6명에 이른다. 한나라당 박보환, 김태원, 정양석, 이정현 의원과 노철래 친박연대 의원 등이 그들이다.
집권여당의 사무처요원으로 정치판을 익힌 그는 다양한 경력을 쌓기위해 1997년 벤처회사로 자리를 옮기려고 사표를 냈다. 그러나 당시 부국장이던 김태원 의원이 말리는 바람에 다시 주저앉았다.
'보안메일'을 최초로 개발한 그 회사는 그 사이 대박이 났다. 변 국장은 1997년 대통령선거를 지원하면서 2년을 더 한나라당에서 일하다가 2000년 벤처회사 총괄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벤처 열풍이 한풀 꺾인 벤처회사는 재미가 없었다.
그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정치권에 재진입했다. 심재철 의원 보좌관으로 10개월 일하던 그는 경북 출신의 김충환 의원(서울 강동갑)이 손을 내밀자 그를 보좌하면서 8년을 보냈다. 김 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국립암센터 간부와 의기투합했다.
지난 2월 보건의료연구원이 신설되자 적임자로 변 국장이 추천됐다. 보건의료연구원장의 제자였던 암센터 간부가 그를 1순위로 추천한 것이었다. 신생 보건의료연구원으로서는 정치권 등에 다양한 인맥을 갖고 있는 인사가 필요했다. 보건의료연구원은 시중에 출시되는 각종 의약품의 효능과 경제성 등을 검정,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보고하는 역할과 국가 임상기획 업무 등을 맡고 있다.
그는 당분간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신설된 연구원을 본 궤도에 올려놓기 전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의성군 비안면이 고향인 그는 서울 창신중, 동국대부속고교를 나왔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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