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외국인 유학생 1만명 시대] ②캠퍼스 문화가 바뀐다

10명중 8명 중화권 출신…아예 중국어로 수업 진행

대구공업대학에 유학온 중국인 학생들이 방학기간에도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대구공업대학에 유학온 중국인 학생들이 방학기간에도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대학 캠퍼스에 외국인 학생이 넘쳐나면서 대학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외국인 교수와 외국어로 진행되는 강의가 많아지고 국내 학생과 외국인 학생 사이의 교류도 활발해지는 등 지역 대학들이 다문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 같은 다문화 바람은 캠퍼스 울타리를 넘어 인근 지역 경제와 문화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다문화의 장(場)

최근 계명대에서는 강의실에서 교수의 강의를 도와주는 외국인 조교와 학과 사무실에서 사무를 보조하는 외국인 근로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만든 '인터내셔널 라운지'에서는 수업을 마친 외국인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수업이 끝나면 학교 인근의 중국, 파키스탄 등 외국인 전용 음식점은 유학생활의 고단함을 달래며 밤늦게 술잔을 기울이는 외국인 유학생들로 붐빈다. 14일 계명대 앞 한 음식점에서 만난 체코 출신 블라디슬라바씨는 "수업이 끝나고 한국인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유학생활의 고단함을 잊는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공부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했다.

외국인 유학생과 한국 학생이 외국어와 한국어 공부를 서로 도와주는 모임도 생겨나고 있다. 대구대에 유학 중인 당뢰씨는 버디(BUDDY)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친구들을 사귀고 있다. 대학 측이 마련한 한국 학생과의 일대일 결연프로그램에 참가한 후 한국 학생과 서로의 어학 공부를 도와준다. 또 틈틈이 캠퍼스 투어, 도서관 투어, 영화보기 등을 함께하며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9월 한국땅을 밟은 중국인 유학생 류빙희(대구미래대 자동차과)씨는 휴일에 경산의 한 교회를 찾는다. 최근 이 교회에서 중국학생반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어 한국어가 서툴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학생들은 캠퍼스 인근 상가에도 반가운 손님이다. 공급과잉 현상을 보이던 영남대 인근 원룸촌은 최근 외국인 유학생들이 '가뭄의 단비'가 되고 있다. 이곳에서 부동산업을 하고 있는 조성희씨는 "그동안 유학생들을 꺼리던 집주인들도 경제위기 때문인지 외국인 학생들을 환영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신입생이 줄어들고 있는 전문대학 주변 상점들은 유학생들을 더욱 반기고 있다. 경산의 전문대 인근 식당가에는 중국어 현수막까지 내걸리고 있다. 식당 주인 최영웅씨는 "1년여 전부터 중국과 베트남 유학생의 발길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이들을 위해 중국과 베트남어가 적힌 차림판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외국 유학생 증가와 더불어 외국인 교수와 외국어로 진행되는 강의도 늘고 있다. 영남대는 전체 교수 748명 중 70명(9.4%)이 외국인 교수이고 외국어 강좌도 153개(4.85%)가 개설돼 있다. 계명대는 668명의 교수 중 외국인 교수가 108명(16%)에 이르고 외국어 강의 비율 역시 12%(363개)에 이른다. 경일대도 높은 외국어 강의비율(8%)과 교수 비율(14.62%)을 기록하고 있다.

◆중화열풍

대구미래대 김원배 자동차과 교수는 요즘 수업 시간에 중국어를 사용하는 일이 많아졌다. 3년 전부터 매년 30여명의 중국인 교환학생들이 자동차과에서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에 서툰 중국 학생들을 위해 김 교수는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한국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사용,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중국 학생들이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지만 중국어 설명이 필요할 때가 많아 중국어 강의를 병행한다"고 했다. 이 대학에는 교수와 교직원 사이에 중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기 시작해 9월부터 중국어 강좌 2개를 개설했다.

이처럼 중국인 유학생이 늘면서 대학가에도 중국 학생들을 위한 생활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최근 끝난 대구가톨릭대학 총학생회장 선거에서는 중국 유학생들을 위한 중국어 선거홍보물이 등장했다. 계명대에서는 우슈, 쌍절곤, 봉술시범, 중국차 전시회, 중국전통의상 전시회 등이 열리고 '도리헌'이라는 중국 학생 전용 휴게실도 생겼다. 경일대에는 중국 학생들을 위한 전용 인터넷 카페가 개설돼 있고, 경북대는 학생들에 대한 공지사항을 중국어로도 알리고 있다.

지역 한 대학 관계자는 "외국인 유학생이 늘고 있지만 대구권 대학에서 중국 외 다른 국가 학생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외국인 유학생이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한 2006년부터 중국 학생이 75%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중화열풍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화 아닌 중국화?

대구경북 내 중국 학생 수가 매년 늘면서 지역 대학이 중화권 대학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달 1일 기준으로 지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7천562명으로 전체 유학생의 76.3%를 차지하고 있다. 2005년 2천240명, 2006년 4천202명, 2007년 6천565명, 2008년 7천458명으로 매년 늘고 있다. 특히 조선족과 타이완, 홍콩, 마카오 등 중화권 유학생까지 합치면 1일 기준으로 대구경북의 중화권 유학생 수는 7천975명(80.5%)이나 된다. 유학생 10명 중 8명이 중화권 유학생인 셈이다.

중국 학생들의 특정학과 쏠림현상도 문제다. 중국 학생들은 4년제의 경우 대부분 상경계열로, 전문대의 경우 자동차 학과로 직행하는데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취업을 위한 지렛대로 삼기 때문이다.

대학 관계자들은 중국 유학생 편중과 이들의 특정학과 선호현상이 계속 방치된다면 대학 사회의 근간까지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특정 국가, 학과 선호 현상이 가속화되면 대학의 국제화라는 의미 자체가 퇴색될 수 있는데다 해당 학과의 수업 자체도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역 일부 전문대학에서는 유학 기간의 절반을 한국어 배우기에 소비하거나 아예 중국어로 수업을 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대구공업대 정이상 국제교류협력처장은 "대학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외국인 유학생의 80%가량이 중국인 유학생으로 다변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최근 들어 많은 대학들이 베트남과 동유럽 국가들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이들 나라 학생들은 경제 형편이 좋지 않은데다 불법 취업과 학교 이탈 등의 문제가 있어 학생 유치가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