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조영아 지음/문학과 지성사 펴냄

우리사회 '찌질이들'의 밑바닥 인생

매일신문 신춘문예(2005) 출신으로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조영아씨의 소설집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가 출간됐다. 소설집 속에는 10개의 단편이 있다.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얼른 보기에는 그럭저럭 살아갈 만한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이른바 '찌질이들'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있지 않으며, 미래 역시 불투명하거나, 부적응자다.

'마네킹 24호'의 주인공은 백화점 쇼윈도에서 인간 마네킹 역할을 하는 모델이고,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의 화자는 왕따 당해 학교에 가지 않고 종일 집안에서 뒹구는 녀석이다. '굿 초이스'의 화자는 발 관리 센터에서 일하는 마사지걸이고, '역주행'의 나는 하루종일 수십 개의 모니터를 쳐다보며 단순노동을 하는 사람이다. 이 외의 인물들 대부분이 노점상, 쇼핑몰 점원,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 이모부의 재활용품 매장에서 부엌일 도와주는 여자 등이다.

그들의 직업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스스로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거나 애착을 보이지도 않는다. 사회적 평가와 무관하게 스스로 자신을 '가능성 있는 존재'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사회적 대접 혹은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주인공들 중에 발마사지사와 구두 수선공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기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불안하고 공허하게 비친다.

작가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거나 말거나 간에 '불안감과 공허감'에 빠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 궤도를 돌아야 하는데, 그래서 걸맞은 이름을 부여받아야 하는데, 궤도에서 이탈하니 이름조차 없다.(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름이 없다.)

그들 모두는 자신의 의지든 사회적 평가든 간에 우리 사회에서 '퇴출'된 사람들이다. 마치 명왕성이 다른 태양계 행성과 달리 궤도 차이가 있고, 덩치가 작다는 이유로 태양계에서 퇴출된 것과 같다. 명왕성은 태양계의 다른 행성과 달리 태양만을 중심으로 도는 게 아니라, 카론과 맞돌고 있는 이중행성이다.

소설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에서 주인공의 어머니가 화자에게 "너 정말 학교 안 갈래?"라고 묻는 것은 "너 정말 제 궤도에 들어가지 않을래?"라고 다그치는 것을 상징한다.

집단에서 퇴출당한 그들은 고달파 보인다. 외로워 보인다. 누군가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외롭고 고달픈 사람은 그들뿐일까? 사람들은 누구나 따뜻한 위로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삶이란 게 원래 불안한 바탕 위를 걷는 것이며, 오늘 걷는 길이 내일 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무엇이 아닐까.

남편은 실직해서 집을 나가버렸고, 자식이라고 하나 있는 놈은 머리에 이상이 생긴 것인지, 학교에서 왕따 당하더니, 이제는 종일 집구석에서 빈둥거린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아이를 위해 매일 교회에 나가기도하고, 식당에서 깍두기를 담그고 설거지를 하느라 밤늦게 들어온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자식이 다른 애들처럼 학교에도 다니고 떡볶이도 사 먹고, 축구도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 속 주인공의 어머니의 일상이다.

세상을 돌리는 사람은 방구석에 스스로 유폐된 사람들이 아니라, 이상한 세상에 살면서도 밤늦도록 식당 허드렛일을 하고,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서 '제발 내 자식 좀 잘….' 이라며 두손 모아 기도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300쪽, 1만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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