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술이 입체와 설치작업 중심으로 펼쳐지면서 실제로 전시장에서 회화와 조각이라는 전통적인 장르의 개념 구분이 무색해져간다. 재현이나 묘사를 거부하고 2차원적 평면성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하던 현대 회화도 장소나 공간을 차지하는 구조물을 통해 모습을 나타내는 경우 외견상 조각과의 경계를 모호하게 해버린다. 역사적으로 두 영역 간의 혼동은 미학적으로 3차원의 조각이 회화에서 가능한 환영을 좇는 데서 주로 거론되었지만 오늘날 많은 경우 견고성이나 촉각적 형체를 부여하는 중력이나 양감 같은 조소(彫塑)의 고유한 개념을 축소(또는 확대)시키면서 일어나는 자유로운 실험으로 인하여 혼란을 키우고 있다.
'갤러리 오늘'에서 열리는 황태갑 교수의 조각전에서는 조각 예술 본래의 특성과 거기에서 수반된 한계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미학적 표현들을 만난다. 그의 대표작인 세장형(細長型)의 소녀 입상은 인간의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외적 형태미와 일치시키려는 노력으로 끈질기게 추구해온 주제다. 인물을 함축적인 미의 형태로 형상화하기 위해 단순화와, 풍부한 세부 묘사를 대신할 인상적인 부분 강조가 필연적이다. 구상적인 요소와 기하학적인 추상 요소가 조화를 이루게 하는 축약이 그의 인물 조각의 특징이다. 자코메티나 브랑쿠시는 물론 고대 키클라딕 조각이나 원시 미술, 로마네스크에서처럼 그의 세장형 인물상에도 자연주의와 추상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려는 양식화의 긴 여운이 남아 있다.
이 작가가 오랫동안 집착하는 또 하나의 주제는 전형적인 산의 표현이다. 산맥과 같은 자연의 재현은 산세의 사실적인 표현, 수직으로 솟아오른 직각절편의 바위벽을 상징하는 융기와 단애를 빼놓을 수 없는데 그런 대자연에서 느낀 장엄함을 명쾌하게 대변하는 것처럼 뚜렷한 인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아가 작가는 이 두 중심 모티프들의 다양한 결합을 시도하여 지리적 특징에 서린 역사적 함축, 삶의 역사성을 표현하여 그의 조각적 주제를 인문주의적 상황 속에 맥락짓고자 한다.
근래 골판지를 이용하여 만든 두상 형태의 원형 조각은 새로운 재료의 변용과 함께 마치 회전대 위에서 한 작업처럼 나름 집약적인 구조를 지닌 점이 독특하다. 전체적으로 그의 조각들은 아담한 크기로 축소되어 있어서 시각적으로 편안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상상력을 통해 크게 규모를 확대시켰을 때의 형태를 즐기게 해주는 낭비 없는 구조다. 또 표면은 매끄러운 광택보다 동(銅)의 자연적인 변화에서 생성되는 색과 질감을 주로 취하는데 재료의 자연미를 존중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미술 평론가 ydk8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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