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뉴욕뉴욕]최준용의 인턴십 다이어리-#10.브루클린 보태니컬 가든

번잡한 일상서 벗어나 자연 속 '풍덩'

맨해튼의 회색 건물들이 지겨워질 때쯤이면 누구나 한번쯤 자연에 대한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나도 회색 도시인 뉴욕을 헤매다 보니 얼마 전 1년간 봉사 활동을 했던 캐나다 벤쿠버에 대한 그리움이 가끔씩 몰려온다. 자연 그대로가 큰 축복인 그 도시를 떠올리면 뉴욕의 도시 곳곳에 있는 푸르른 자연을 찾고 싶어진다.

센트럴 파크는 물론 광활하고 도시민들에게 딱 적합한 자연이지만 어디까지나 도시 속 공원인지라, 도시의 느낌이 강해 2%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브루클린에 위치한 보태니컬 가든이다. 총면적 21만㎡ 면적의 이 식물원은 브루클린 박물관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많은 관광객들은 브루클린 박물관은 잘 알고 필수 코스로 찾지만, 정작 바로 옆인 이곳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현지인은 제외다.

입구에서 학생할인요금이 적용되어 5달러의 요금을 지불했다. 입장료는 언제나 나를 마음 아프게 하지만 여긴 뉴욕이니까.

입구에 들어서자 초록의 세계가 펼쳐진다. 푸르른 잔디는 물론이고, 다양하고 향기로운 꽃들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겨울이 가기 전에 꼭 한번 이곳을 가보라던 친구에게 마음속 깊이 감사하며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넓디넓은 식물원에는 어느덧 멕시칸 전통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어느 한 구석에 천막이 쳐져있고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마침 내가 간 날은 고추 축제(한국말로 바꾸자면)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말이 고추지, 사실은 맥시코의 할라피뇨 종의 고추였다. 고추에 대한 소개, 종자 판매, 고추를 넣어 만든 음식 판매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가득했다. 물론 이색적인 느낌에 신이 나긴 했지만, 시끄러운 맨해튼을 벗어나고자 하였던 처음의 마음 때문인지 행사장은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식물원을 구경하고 있는데, 어느덧 비가 오기 시작했다. 조용한 식물원에 비가 내리자 세상이 온통 시끄러워졌다. 사람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풀잎들도 물기를 머금기 시작했다.

마침 앞쪽에 우산이 드리워진 노천 카페가 보였다. 비를 잠시 피하고자 그곳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셨다. 가뜩이나 한적했는데, 비가 온 후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것이 내가 그리워하던 진정한 호젓함이다. 야외 정원 구경은 비가 그친 후 하기로 하고, 일단 실내 식물원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곳은 건조기후, 온대기후, 열대기후로 나뉘어져 각각의 독립된 관들이 있었다. 사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입장료 5달러가 아깝다고 생각했지만 실내 식물원을 구경한 후,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자주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위기도 조용해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생각을 정리하기도 좋고, 자연의 심미도 한껏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진귀한 식물들이 많았다. 한국의 식물원에 비해 규모 자체가 다르기도 하지만 세계 각국의 다양한 나무와 꽃들은 식물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감동을 주었다.

실컷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길에 일본식 정원을 발견했다! 기운도 없고 피곤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정원은 볼 수 없었다. 우리나라 정원의 여백의 아름다움과 자연미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곳에서 결혼식을 하고 나서 단체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의 무미건조한 결혼식과는 달리 사람들이 유독 더 행복해 보이고 여유도 있어 보였다. 역시 자연과 어우러진 사람들 사이에서 아름다움과 흥이 한껏 고조되어 보인다.

브루클린 보태니컬 가든은 내게 삭막한 도시 생활의 '비밀의 화원'이 되어줄 것 같다. 사람과 일에 지치고 정든 사람들이 그리울 때마다 이곳을 찾아 작은 위로를 받고 싶다. '자연은 가장 위대한 잠언'이라던 어느 시인의 시구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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