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영남대 국제지원팀 행정실로 직접 손으로 짠 듯 보이는 분홍색 니트 카디건을 입은 아가씨 두 명이 들어섰다. 체형과 얼굴. 언뜻 봐서는 구분이 잘 안 되는 두 사람은 영남대 대학원 시각디자인학과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쉬얀화와 쉬리화씨. 이들은 중국 지린(吉林)성 출신의 쌍둥이 자매다. 여느 쌍둥이들처럼 자주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이들은 이날도 어머니가 손수 지어주신 옷을 입고 있었다. 약간 어눌한 한국어 실력을 제외한다면 영락없이 평범한 한국 대학생 자매의 모습이다.
30분 간격으로 태어나 20년을 한 몸같이 붙어 지냈던 자매는 2004년 난생 처음으로 이별을 경험했다. 그해 3월 동생 리화씨가 아빠 친구의 소개로 한국으로 유학을 떠났기 때문이다.
리화씨는 처음에는 강릉대 어학연수원에서 한국어를 배우다 그해 9월 영남대 한국어교육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이듬해 3월, 영남대 조형대학 디자인학부 신입생이 됐고, 올해 3월에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는 언니를 불렀다. 디자인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자매 중 보다 적극적인 성격인 리화씨에게 먼저 한국 유학을 권한 아버지가 '정착한 뒤 언니도 데려 가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다.
당시 지린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뒤 중국 선양에 위치한 자동차회사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던 언니 얀화씨도 지난 9월 동생과 같은 학과에 입학해 동생과 함께 한국유학생활을 시작했다.
"동생으로부터 유학생활 이야기를 들으며 멀리서나마 한국유학생활을 꿈꿔왔습니다. 특히 섬유와 디자인 관련해서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는 대구의 디자인 기술을 직접 배우고 싶었어요."
헤어진지 5년 만에 다시 만난 이들은 어떤 형제자매보다 진한 우애를 다지고 있다. 수업도 같이 듣고, 밥도 같이 먹고, 물론 한 집에서 잠도 같이 잔다. 이들 자매에게 한국유학생활 동안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서로'인 셈이다. 한국어, 한국생활에 아직 서툰 언니를 위해 동생 리화씨는 집 밖에서는 통역, 집 안에서는 요리사 역할을 하고 있다. 예전보다 할 일은 많아졌지만 그래도 자매가 함께할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하다.
"어릴 적에는 언니에게 늘 보살핌을 받았지만 여기서는 제가 언니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어요"라며 즐거워하는 동생 리화씨는 "지난 수년 동안 언니가 정말 많이 그리웠는데 이렇게 같이 있게 돼 얼마나 든든한 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전공분야인 시각디자인 공부만큼은 한치의 양보도 없다. 때론 이론에 강한 동생과 실기에 강한 언니 사이에 학문적 논쟁이 밤새 벌어지기도 한다.
한국의 삼겹살을 특히 좋아한다는 이들은 종종 삼겹살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 그때마다 리화씨는 한국친구들을 불러 언니와도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뭐니뭐니해도 다른 나라 말을 배울 때 가장 좋은 방법은 현지인 친구를 사귀는 것이지만 내성적인 언니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이에게 먼저 다가가 친구가 되기는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 리화씨는 "영남대에 입학해 기숙사에서 한국인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했던 것이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생활에 적응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됐다"며 "언니가 그런 룸메이트 못지 않은 한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두 자매의 한국사랑은 각별하다. 어렵기만 했던 한국어도 이제는 쉽다. 언니 얀화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만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한국어가 제법 잘 돼 기분이 좋단다. 동생 리화씨는 한국이 지금은 잠시 떠나 있어도 그리운 곳이 됐다. 한국사람들이 보기엔 무뚝뚝하지만 사귈수록 깊은 정이 들기 때문이란다. 리화씨는 조만간 한국 국적으로 귀화할 예정이다. 같은 동아리에 다니던 중국인 유학생이 귀화를 한 것도 이 같은 결심을 굳히게 된 이 유중 하나다.
"유학생활이 인생에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는 두 자매는 "교육이든 정치든 모든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 두 나라가 교류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 가진 기술과 지식으로 대구를 세계속의 섬유·패션도시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제 막 겨울방학을 맞은 이들. 방학 동안의 계획을 묻자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고향으로 우리가 가는 대신 부모님이 오시기로 했다"면서 "한국의 아름다운 겨울을 오래간만에 가족이 다함께 즐길 수 있게 돼 정말 기쁘다"며 방긋 웃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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