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소재업체인 A사는 20만달러 규모의 소량 수출을 하다 지난해 이후 수출을 포기했다. 수출기업의 꿈을 접고 내수업체로 다시 되돌아앉은 것이다.
"수출해 보겠다고 나서니 시장 개척하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갔습니다. 시제품 만들어 1년에 해외에 몇번씩 나가고 전시회도 열심히 찾아다녀야 하는데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이 비용이 너무 많이 듭니다. 내수가 줄어들어 더 넓은 시장으로 나갈 수밖에 없지만 당장 돈줄이 마르니 수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죠." 이 회사 대표 B씨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해외로 발을 뻗쳤다가 다시 '우물 안 개구리'로 유턴하는 기업들이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급증하고 있다. 넓은 세계시장을 포기하고 성장세가 뻔한 내수시장에 안주하는 '앉은뱅이 기업'이 다시 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경제성장의 견인차였던 수출기업들을 도와줄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출 포기할래요
한국무역협회 대구경북지부가 대구의 수출업체 숫자를 집계한 결과, 소액 수출업체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기업들이 초보단계에서 제대로 된 수출기업으로 자라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연간 10만~50만달러를 수출하던 대구 기업들은 2003년에만 해도 1천304곳에 이르렀다. 10만~50만달러를 수출하던 기업들은 2007년엔 1천164곳으로 조금 줄더니 금융위기가 닥친 지난해엔 406곳으로, 올해는 391곳(10월 말 기준)으로 급감했다. 소액 수출기업들이 6년 만에 3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50만~100만달러를 수출하던 기업은 2003년 387곳에서 올해는 144곳으로 줄어 역시 반토막이 났다. 100만~500만달러를 수출하는 기업은 2003년 427곳에서 지난해 247곳으로, 올해는 231곳으로 감소했다.
다만 최고액 수출기업들의 감소폭은 크지 않았다. 2003년 1곳도 없었던 1억~5억달러 수출기업은 2007년 4곳으로 불어난 뒤, 2008년엔 4곳, 올해는 3곳이었다.
◆왜 우물 안 개구리가?
한 해 100만달러 규모를 수출하는 섬유업체 대표는 "수출 초보단계에서는 품질도 그 이전보다 크게 올려야 하고 마케팅 비용을 우선 많이 써야 한다. 이런 초기 자금부담을 견뎌내야 하는데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은행이 돈줄을 죄니 수출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해외사업을 하고 있는 국내 중소기업 600개사를 대상으로 한 '중소기업의 해외사업 현황과 애로요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출 중소기업의 93.4%가 해외사업 추진과정에서 애로를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애로유형으로는 '전시회 참가 등 해외마케팅 애로'(41.1%)를 가장 많이 지적했다. 이어 '해외시장 정보부족'(17.5%), '수출절차상 애로'(16.8%), '무역금융 애로'(9.9%) 등이 꼽혔다.
이런 가운데 갈수록 늘어나는 각종 인증서 요구 등 각국의 간접 무역규제는 수출을 포기하는 기업들을 더 늘리고 있다. 역내 중소기업들은 이런 정보에 어두워 무역규제의 벽을 넘지 못한다.
실제로 아르헨티나 경우, 올 3월부터 가구·신발·섬유·가전 등 제품에 대한 사전 수입 승인 제도를 강화하면서 각종 인증을 받아야 수입을 해주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해 하반기 모든 수입제품에 대한 적합성 인증서 첨부를 요구한 바 있다.
올 들어 EU를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은 환경 규제, 전기제품의 에너지 효율 규제 등을 크게 강화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발표한 세계 각국의 '무역 기술 장벽' 건수는 2005년 771건, 2006년 875건, 2007년 1천31건, 지난해 1천251건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올 들어는 10월 말 기준으로 1천189건을 기록, 지난해 수준을 웃돌 전망이다.
한편 대한상의 조사에서 정부지원 사업 중 가장 도움이 된 것에 대해서는 응답기업의 52.3%가 '해외박람회 및 전시회 지원'(52.3%)이라고 답해 해외마케팅 지원이 가장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정책지원이 더욱 확대됐으면 하는 사업으로도 '전시회 참가 등 해외마케팅 지원이 57.1%를 차지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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