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석양」/ 김충규

거대한 군불을 쬐려고 젖은 새들이 날아간다

아랫도리가 축축한 나무들은

이미 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매운 연기 한 줌 피어오르지 않는 맑은 군불,

새들은 세상을 떠돌다 날개에 묻혀온

그을음을 탁탁 털어내고 날아간다

깨끗한 몸으로 쬐어야 하는 맑은 군불,

어떤 거대한 혀가 몰래 천국의 밑바닥을 쓱 핥아와

그것을 연료로 지피는 듯한 맑은 군불,

숨 막힐 듯 조여 오는 어둠을 간신히 밀쳐내고 있는 맑은 군불,

그곳으로 가서 새들은 제 탁한 눈알을 소독하고 눈 밝아져

아득한 허공을 질주하면서도 세상 훤히 내려다보는 힘을 얻는다

저 거대한 군불 앞에 놓인 지구라는 제단,

그 제단 위 버둥거리는 사람이라는 것들,

누구의 후식인가

살짝 그슬러 먹으려고 저리 거대한 군불을 지폈나

내 시선이 거시적이라면 저 새들의 항적을 추적할 수 있겠다. 젖은 새들은 군불을 쬐려고 날아간다. 석양의 군불은 먼저 축축한 나무로부터 불지펴진다. 그 군불은 그을음이나 연기 없는 맑은 군불이다. 젖은 새들의 영혼이 필요한 군불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인간은 이 거시적 세계 속에서 후식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는 불가피한 주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저 석양빛 군불은 쓰레기를 태워서 얻은 불씨가 아니라 핀 영혼에 바치는 영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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