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갱이를 그냥 '아지'라고 불렀다. 고등어처럼 생겨 맛도 그럴 만했지만 그걸 먹을 때마다 탈이 났다. 어머니는 우리 여섯 식구의 입을 위해 고등어 한 손을 사자니 한 끼에 다 먹어 치울 것 같고 간 갈치를 사자니 고등어보다 더 비싸게 치어 하는 수 없이 값이 싼 '아지'를 사 오신 모양이다.
어느 장날 어머니가 들고 온 장바구니에는 '아지'가 수북했다. '아지'는 꼬리에서 배 쪽으로 올라오면서 방패비늘이 하사관 계급장 모양으로 줄지어 달려 있었다. "'아지'를 많이도 사 오셨네."라고 했더니 "너희들 모두가 입맛이 없는 것 같아 큰 맘 먹고 사 왔다"고 대답하셨다. 어머니는 오래 두고 먹을 요량으로 덧간을 치시더니 종이에 사서 소금 독에 묻어 두셨다.
##'아지' 먹는 날 어지럽고 하늘은 뱅뱅
그날 사온 '아지'는 물이 좋지 않은 것이었다. 이미 반쯤 썩어 있는 것에 소금을 더 친다고 한물간 물이 돌아오지는 않을 텐데 어머니는 독한 간 처방으로 맞서고 있었다. '아지'를 구워 먹는 날은 어지럽고 하늘이 뱅뱅 돌았다. 얼굴도 잘 익은 홍시 색깔로 붉어지면서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담 밑에 묻어둔 동치미 국물을 퍼와 무슨 명약인 듯 두어 사발쯤 마시게 했다.
'아지' 식중독은 우리 식구 중에서 내가 가장 약했다. 나는 '아지'라는 소리만 들어도 알레르기 덫에 걸려 속이 울렁거리면서 얼굴에 붉은 노을이 끼곤 했다. '아지'로부터 몇 번 당하고 나선 어머니께 "다시는 '아지'를 사오지 말아 달라"고 간청을 드렸지만 싼값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셨다.
'아지'와 맞짱을 뜨는 날은 내가 연전연패로 깨졌어도 '아지'는 우리 집 식탁에서 좀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고향을 떠나온 후론 '아지'를 만난 적이 없다. 혹시 아내가 그런 사연도 모르고 실수로 그걸 사온다 해도 추억을 위해서 한 번쯤 뒤적거려 보겠지만 먹지는 않을 작정이다.
어린 시절 나를 애먹인 것 중에 '아지' 식중독이 첫째라면 다림질할 때의 일산화탄소 중독을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다. 전자는 음식이고 후자는 가스지만 증상도 비슷했고 치료 또한 동치미 국물 요법뿐이었으니 서로를 내외종간이라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어머니 다림질 조수 노릇 30분도 못 견뎌
어머니는 교회 가시기 전날인 토요일 저녁 한복 다림질을 했다. 요즘은 전기다리미뿐 아니라 스팀다리미까지 나왔지만 그때는 주물로 만든 납작 다리미에 불붙은 숯을 담아 치마를 비롯하여 이불 호청이며 온갖 것을 다림질했다. 다림질을 할 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조수로 기용했고 조수는 어머니의 눈짓에 따라 잡아주고 당겨주며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문제는 가스 중독이다. 다림질에 바쁜 어머니의 손을 따라가려면 코를 숯불에서 멀리 뗄 수가 없다. 그러면 삼십 분을 채 견디고 못하고 나자빠진다. 공기 중에 일산화탄소 0.05%만 들어 있어도 가스에 중독돼 머리가 어지럽고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매스꺼움을 참지 못하고 토하게 된다. 이때 명약도 역시 동치미 국물이다. 어머니는 다리미를 팽개치듯 밀쳐 놓고 큰 사발에 국물을 떠와 응급처치실의 수련의처럼 등을 두드리며 동치미 국물을 배 터지게 마시게 했다.
해마다 겨울철이 오면 '아지'식중독에 걸려 곤욕을 치르고 다림질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혼겁을 먹을 때가 많지만 그것은 반복될 뿐 중단된 적은 없었다. 다림질하다 넘어지면 숯에 소금을 더 뿌리고, 한물간 '아지'에도 소금으로 덧간을 할 뿐 그만두지 않았다. 가난과 남루의 죄는 이렇게 질기다.
동남아 여행 중에 상한 시푸드를 먹고 식중독에 걸린 적이 두어 번 있었다. 토사곽란을 일으켜 싸고 토하는 가운데 어머니가 퍼다 주신 동치미 국물이 생각났다. 그러나 그곳에는 동치미가 없었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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