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극한상황에서도 빛은 있다.
'잡초'(1988년)의 닉 놀테는 종신형에 절망해 번번이 자살을 시도하지만, 이마저 실패하는 정말 잡초 같은 인생이다. 그가 형무소에서 연극에 눈을 뜨고 마침내 좌절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감옥은 벼랑 끝에서 모든 희망을 접은 인간을 표현하는 공간으로 곧잘 쓰인다.
김윤진 주연의 '하모니'는 여자교도소가 배경이다. 이곳 또한 실패와 좌절, 회한과 절망의 정서만 벽돌처럼 견고하게 쌓여 있다.
정혜(김윤진)는 의처증으로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사고로 죽이는 바람에 수감된 무기수다. 교도소에서 낳은 아들 민우가 이제 한 살이다. 합창단의 교도소 위문공연에 감동받아 교도소장에게 여죄수 합창단 결성을 제안한다. 합창단을 성공시키면 아들과 함께 특별 휴가를 보내준다는 약속을 받은 정혜는 재소자들을 모아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한다.
그러나 개성이 강한 재소자들은 툭하면 싸우는 바람에 6개월이란 한정된 기간만 허락된다. 교도소에서 아이를 낳으면 18개월만 엄마가 보살필 수 있다. 민우를 내보내야 하는 기간과 겹쳐 있다. 음치인 그녀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모니'는 지독한 최루성 영화다. 재소자들은 저마다 한 바가지 눈물로도 설명 못하는 사연들을 안고 있다. 끄집어내도 눈물이고, 삼켜도 눈물이다. 티슈를 나눠주는 이벤트를 할 정도로 눈물이 흔하다.
헤드락을 걸었다가 사람을 죽여 복역 중인 레슬러 연실(박준면), 실수로 의붓아버지를 죽이고 살인자가 된 유미(강예원), 그리고 음대교수에서 사형수로 전락한 문옥(나문희).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사기를 저지른 화자(정수영)가 가장 양호(?)한 편이다. 모두 중죄인들이지만, 어릴 때부터 성폭행을 일삼은 의붓아버지, 보란 듯이 후배와 바람피우는 남편들은 모두 죽어 마땅한 인간들로 그려진다. 악한 사람은 없고, 억울한 사람들만 가득하다.
'하모니'는 눈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독설과 갈등 속에서 튀어나오는 웃음도 있다. 합창단 모집 오디션장은 상투적이지만 개그 콘테스트를 보듯 박장대소가 터진다. 진지한 연기만 해오던 김윤진도 왈가닥 아줌마로 웃음을 유도하지만, 정작 가장 편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은 한 살배기 민우를 통해서다. 박준면, 강혜원을 비롯한 조연들의 호연도 엿보인다.
그러나 웃음과 눈물이란 상업적 의도가 너무나 노골적이다 보니 극의 리얼리티는 성기고 어설픈 편이다. 특히 아쉬운 것은 이 영화가 명색이 합창이 나오는 음악영화임에도 거기에 대한 고민이 덜했다는 것이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극을 따르다 보니 정작 중요한 점은 놓치고 있다.
전혀 새롭지도, 깊지도 않은 영화지만 눈물이 쏟아지는 것은 아무래도 관객의 몸속에 흐르는 신파의 피 때문일 것 같다. 신파는 오로지 관객의 눈물을 흘리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1920~30년대 만들어진 신파연극이다. 일종의 눈물을 위한 목적극이니 그 외의 것들은 모두 부수적인 것들일 뿐이다.
신파는 요즘 눈물을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되면 극의 리얼리티와 상관없이 아무 장면이나 집어넣는 행태를 비꼬는 말로 쓰인다. '하모니'는 그런 티가 역력하다. 음치인 정혜가 홀로 독창을 해도, 중요한 대목에 립싱크가 나와도, 합창대회에서 어이없이 절도죄로 의심받아 여죄수들이 옷을 벗는 억지가 있어도 모두 용서하라는 식이다.
이 영화가 감동적이라면 그것은 극적인 완성도도, 품격 높은 음악도, 뛰어난 연기도 아닌 신파의 힘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눈물만 나게 해달라'는 관객들에게는 만족할 성과를 주는 영화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극장 안 불이 켜지는 바람에 머쓱해지는 이들이 많다. 적어도 눈물 닦을 시간을 줘야 되는데 말이다. '해운대' 조감독 출신의 강대규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며 윤제균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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