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학부모인 어른들이 중'고등학생이었을 때 학교로부터 받은 가정통신문은 주로 공납금 납부를 독촉하는 것이었다. 몇몇 학부모는 그때 '정학'이나 '근신' 처분의 가정통신문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가정통신문'이라는 무거운 느낌의 말 그대로 그것은 성적 통지표와 함께 학생에게도 학부모에게도 그렇게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들이 중'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이번 달에 학교에서 받아온 가정통신문을 보았더니 뭔가 달라져 있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나 홈페이지 또는 메일 서비스를 활용하는 식으로 전달 방식이 달라졌다는 얘기가 아니다. 공납금 납부를 독촉하던 학교가 오히려 학비를 지원해 줄 테니 신청을 하라는 내용을 보내온 것과 같은 변화를 말한다.
학교 일정과 시험에 대한 안내, 학업 성취도에 따른 반 편성 방법, 자전거를 타고 올 때의 안전 당부와 같은 것을 비롯하여 급식 식단에 대한 선호도 조사, 교복과 체육복 공동 구매에 대한 희망 여부, 방과후학교 강좌와 수련활동 장소 선택과 같이 주로 학부모의 의견을 묻는 내용들로 가정통신문은 달라져 있었다.
그 중에는 학부모 총회를 알리는 것도 있었는데, 낮에 열리는 학년별 학부모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저녁 시간을 따로 마련해 학부모회를 연다고 한다. 간혹 신문에서나 보던 퇴근 후 학부모회를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마침 직장과 아이의 학교가 가까워서 퇴근 후 학부모회에 들렀더니 회의실은 직장에서 금방 퇴근하고 온 학부모들로 가득했다. 학교 측에서도 학부모들이 이만큼이나 호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교무실에는 교장, 교감뿐만 아니라 모든 교사들이 잔칫집처럼 분주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낮에 중'고등학교 교무실을 방문해 보면 대부분 교사들이 수업에 들어가서 허전한데 이날 밤 학교의 교무실은 웃음 소리와 이야기 나누는 소리로 왁자하였다. 잘생긴 담임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나왔다.
자율과 경쟁을 바탕으로 한 학교 정책 변화가 학부모의 교육 참여 욕구와 서로 맞물리면서 학부모회가 달라지고 있다. 입학식에 참석한 몇몇 학부모들을 예고 없이 모아 졸속으로 학부모회를 구성하거나, 학급이나 학교 임원 아이들의 부모 모임을 그대로 학부모회로 인정하거나, 학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특정 학부모들로만 학부모회를 운영하는 모습이 사라졌다.
학교에서 보낸 학부모 총회 안내를 자세히 보면 한 명의 학부모라도 더 참석하게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바로 보인다. 앞에서 말한 대로 시간 배려는 말할 것도 없고 도저히 참석이 어려운 학부모를 위해서는 위임장으로까지 의견을 받는다.
총회 내용도 예전의 학부모회에서는 그다지 고려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학부모 입장에서 관심 있는 주제들로 짜여 있다. 학부모 총회에서 학부모회의 규약을 제정하는 것이나, 교원 평가를 위한 학부모 수업 참관 계획 수립, 담임이 주관하는 학급 단위 설명회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학교뿐만 아니라 교육청과 정부에서도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특히 대구교육청에서는 이달 초 전국 학부모 정책 담당자 연수를 대구에 유치해 개최했고 31일에는 전국 650여명의 학부모들이 '학부모 교육정책 모니터단'으로 위촉돼 대구에서 발대식을 가지게 된다.
이제 학부모가 학교의 요청에 따라 정책적, 제도적인 지원을 받으며 학교에 참여하는 상황이 열렸다. 이러한 때일수록 학부모들은 교육 수요자 입장 이전에 학부모라는 말 그대로 아이를 돌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으로 학교에 참여하기를 기대한다.
정책과 제도가 밀어주는 학부모회라고 괜히 행정 절차나 격식, 위상을 따지는 데 힘을 빼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자율과 경쟁을 강조하는 만큼 한편으로는 힘겨워하고 경직돼 가는 학교에 학부모들이 참여함으로써 학교 공동체 구성원 간에 인격이 전해지는 따뜻한 연계가 다시 회복됐으면 한다. 지금 학교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힘이며, 이 힘이 필요해서 학교는 학부모를 부르고 있다.
이상현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