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가을축제

여고 축제때 내 문집에 글 남겼던 남학생 지금은 어디서…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김진란(인터넷투고)

다음 주 글감은 '햅쌀'입니다

♥ 동료들과 의미있는 산행

도심을 벗어나 조금만 달리면 가을 단풍이 한창이다. 발갛게 매달린 감나무의 홍시도 탐스럽고 관상용으로 심어놓은 꽃사과 열매도 빨갛다 못해 석류 알처럼 영롱하다. 새해가 시작되는 정월에는 올 한해 이루고자 하는 일들을 생각하며 무엇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몇 번을 고쳐 쓰고 고민했는데 벌써 추수가 끝나려 한다.

하루하루 바쁘게 흘린 땀들이 모여 가을에는 알찬 열매를 따고 함께 했던 동료들과 가을 축제를 연다. 지난 휴일 '물 사랑 팀'이 팔공산 갓바위에 올랐다. 처음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7부 능선을 올라가니 땀에 흠뻑 젖으며 숨이 막힌다. 오랜만에 팀 동료와 같이 오면서 들뜬 마음에 속도가 빨랐나 보다.

정상에는 고3 수능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터라 많은 학부모들이 부처님께 정성껏 절을 하고 소원을 빌고 있었다. 산을 오르면서 동료들과 유익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으며 갓 바위 부처님 앞에 다 모였을 때는 모두가 땀에 젖어 있었다.

"힘겨운 허물 벗기를 거듭하며 어른 벌레가 된 곤충의 겨드랑이에는 멋진 날개가 돋습니다." 산을 내려와서는 물 사랑 팀장님의 인사말에 고무되어 손이 아프도록 손뼉치며 자축의 잔을 높이 들었다. 참으로 의미 있는 축제 산행이었으며 모두가 즐겁게 파이팅을 외쳤다.

허이주(대구 달서구 용산2동)

♥ 자작詩가 노래되어 합창대회 대상

화원여자고등학교에 근무할 때다. 개교기념 연꽃예술축제는 사흘간이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고 교무실 창 너머로 붉게 물든 단풍이 눈에 들어왔다.

학생과장 선생님이 예술제에 발표할 작품을 내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리움'이란 제목의 시를 지었는데 음악 선생님이 그 시에 곡을 붙였다. 강당에서 발표회가 열리던 날, 강당 양쪽에 내어 걸린 학생들의 작품은 나름대로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나는 내가 쓴 시 '그리움'을 낭독하였고 스물 한 명의 합창단원들은 음악 선생님이 곡을 붙였던 노래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얼마 후, 11월에 그 노래는 달성군내 중고등학교 음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가을 축제를 생각하니 그때 지었던 시가 떠오른다.

객창에 홀로 누워 잠 못 이룬 이 한 밤/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처서 소리 나니/두고 온 님 생각이 긔 더욱 간절하다/흘러간 옛일들이 열두 자락 쌓이는 밤/비 돋는 소리 따라 옛사랑이 그리운데 떠나신 님 생각이 긔 더욱 애절하다.

토닥토닥 돋는 소리 님이 오는 소리인가/살며시 일어나 문을 열고 내다보니/님은 아니 오고 그리움만 더 하구나/솔바람 일어나니 비구름 사라지고/그 사이 새벽별이 나를 보고 손짓 하네/어느 덧 내 마음은 별을 따라 님께 가네.

박효준(대구 달서구 송현2동)

♥남학생 출입이 공식 허용된 날

여고 시절, 가을이면 교목인 은행나무 아래에 문집을 전시하고 시화며 그림을 전시했다. 방송반 친구들은 방송제 준비에 바빴었고 여고에 공식적으로 남학생의 출입이 허용되던 날이었다. 파스텔과 물감으로 이것저것 나의 재주를 문집 안에 채우고 널따란 방명록을 따로 만들어 두어 누군가 나의 작품을 보고 감상을 써놓고 가길 기대하였다. 다시 문집을 돌려받던 날,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누가 내 문집을 보고 방명록에 글을 남겼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해 나의 문집에는 나의 어릴 때 사진을 붙여놓았었다. 어릴 때 사진은 눈이 동그라니 큼직했고 볼은 터질 듯이 통통하니 귀여웠다. 아마도 그 모습 그대로만 컸으면 너무나 예쁜 여고생의 모습이리라 상상하는 남학생들이 많았던 것 같았다. 여기저기에 남학생들의 구애어린 글들이 적혀있었고 그 가운데 사춘기 시절 혼자 좋아했던 남학생의 글도 있었다. '어릴 때 많이 귀여웠네! 지금 모습과도 닮았고, 너의 문집 보며 너의 생각을 읽고 간다.' 그 구절을 읽고 또 읽으며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이 된 딸이 가을축제 한다고 들떠 있는 모습을 보며 괜스레 여고시절 추억이 생각나 문집을 꺼내어 읽어 본다. 다시 보니 유치하기 그지없는 시들과 글들이지만 그 남학생의 글을 다시 읽으며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고 있으리라 추억한 가을날이었다.

박경주(대구 수성구 지산동)

♥마을 축제였던 가을운동회

가을 공기는 특유의 알싸한 느낌을 품고 있다. 코 끝에 알싸한 향이 풍겨오면, 어김없이 가을 운동회가 떠오른다. 요즘 지역마다 축제들이 많지만 최고의 가을 축제하면 당연히 가을 운동회라고 생각한다. 요즘이야 가을 운동회가 많이 축소됐지만 내 어린 시절엔 가을 운동회가 온 마을의 축제였다. 가을 운동회를 앞두고 엄마는 땅콩이며 햇밤을 삶았고, 김밥을 싸주셨다.

운동회 당일이 되면 학교 운동장에는 만국기가 내걸리고, 초등학생 아이가 없는 사람이라도 이웃과 함께 학교 운동장을 찾았다. 가족들은 돗자리 위에 온갖 음식을 놓고 아이들을 응원했고, 우리도 점심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목청이 터져라 응원했다. 청군, 백군 머리띠를 두르고 달리기도 하고 줄다리기도 했다. 응원상을 받기 위해 반마다 준비해온 응원 도구를 가지고 열성적으로 응원했다. 선생님은 달리기 등수 대로 팔에 도장을 찍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좀 유치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그 도장이 어찌나 빛나는 훈장같아 보이던지. 달리기엔 영 소질이 없는 나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공부는 못하지만 체육에 소질이 있던 친구들도 이날만은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최근 한 축제장을 가본 적이 있다. 축제의 모든 요소를 갖추긴 했지만 모든 걸 돈으로 사야 하고 억지로 흥겨움을 연출하는 분위기에 어색했던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온 마을 사람들과 학교 학생들이 함께 어울렸던 가을 운동회가 진정한 축제가 아니었나 싶다.

김수정(대구 동구 불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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