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 10번 찾아가도 인터폰 대답없어…인구주택조사 동행 취재

"오후 10시 퇴근 못해" 조사원들 포기 속출

9일 오후 인구주택총조사 조사원인 김춘애(46·여) 씨가 대구 북구 대현동 원룸촌을 돌며 조사에 나서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9일 오후 인구주택총조사 조사원인 김춘애(46·여) 씨가 대구 북구 대현동 원룸촌을 돌며 조사에 나서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몇 명 사는지만 말해주면 되죠. 인터폰으로 하면 안 되나요."

벌써 5번째 찾아간 집이었다. 어렵사리 들은 목소리지만 살갑지 않은 기운이 묻어 있다. '5분이면 끝난다'는 언약을 주고서야 대문이 열렸다. 이름, 성별, 나이, 교육 정도, 국적, 혼인상태, 사용하는 방의 수 등 몇 가지를 묻고 나니 채 5분도 안 걸렸다. 총 19가지 질문이 있지만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한 응답자의 눈치를 살펴가며 10가지 질문 정도에서 끝냈다. 나머지 질문은 원룸이라는 특성상 건물주에게 물어봐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간 내서 대답해주니 고맙지요. 어떤 건물주는 무단 침입이라면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는걸요."

◇고난의 연속=이달 1일부터 15일까지 예정된 인구주택총조사 현장방문이 막바지에 치닫고 있다. 인터넷 참여율이 높아진 반면 현장방문 조사는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며칠째 찾아가도 사람 만나기가 힘든가 하면 어렵사리 만나도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다. 설상가상으로 팍팍한 일정까지 겹쳐 중도포기하는 조사원들이 속출하고 있다.

9일 오후 3시. 경북대 후문에 인접한 대구 북구 대현동 일대에서 인구주택총조사 조사원으로 나선 김춘애(46·여) 씨는 가가호호 끈질기게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오랜 기간 집을 비워 얼굴조차 보지 못한 이들이 적잖기 때문이다.

현장방문 초반에는 하루 15가구 안팎의 조사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4가구 정도면 만족해야 한다. 김 씨가 맡은 대현1동은 총 64개 구역으로 나뉘어 22명의 조사원들이 조사에 나섰고 김 씨는 총 270가구를 맡았다. 이중 92가구가 인터넷 조사로 인구주택총조사에 참여해 현장방문 대상 가구는 178가구. 김 씨는 "대상 가구 상당수가 경북대 인근 원룸촌 학생들이 사는 곳이어서 대상자의 얼굴을 보기가 만만치 않다"며 "수업시간이 제각각인데다 생활 리듬도 달라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준비조사 기간 동안 현장방문 대상 가구 방문을 위해 원룸이나 고시텔의 현관 비밀번호도 알아야 했다. 행정기관의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 알아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어렵사리 들어선 곳에서도 일부 건물주들은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되는 것 아니냐"며 핀잔을 주기 일쑤였고, 일부는 "여기서 이러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이나 조사해서 도와주라"며 내쫓기도 했다. 하다못해 김 씨는 원룸 건물 밖에서 기다리다 들어가는 학생을 붙잡고 2분만 시간을 달라고 해 조사를 진행한 적도 있다고 했다.

조사원들이 힘들어하는 부분 중 하나는 '실거주자'가 조사 대상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학생들 대부분이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원래 집이 다른 곳인데 내가 왜 조사 대상이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듣는다고 했다.

◇10% 조사 불가능=조사 마감을 닷새 가량 앞둔 김 씨에게 남은 방문대상 가구는 20곳 정도. 진짜 조사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남은 20가구 조사를 위해 김씨는 적어도 5번 이상 , 어떤 곳은 10번도 넘게 찾아갔다고 했다.

비단 김 씨뿐 아니라 대부분의 조사원들이 10% 정도가 아직 조사하지 못한 '숙제'를 갖고 있다. 9일 기준 대구시는 전체 96만여 가구 중 78%가 인구주택총조사에 참여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방문해도 오랜 기간 집을 비워 실거주자를 만나지 못할 경우 장기부재 가구로 본다"며 "15일까지 최선을 다하겠지만 10% 정도는 조사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씨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일해도 사람이 없는 경우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오후 10시 이후에 방문한 적도 있다"고 했다.

대구시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사원은 모두 4천25명. 99%가 여성이다. 오후 늦게까지 현장방문에 나서야하는 등 일이 힘겨워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도 적잖았다. 대구 북구청의 경우 708명의 조사원 중 150명이 교체됐다. 실제 5년 전 인구주택총조사에 참여했던 이들 중 올해 조사에도 참여한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들의 일당은 4만2천660원. 16일간 일해도 68만원 남짓이다. 조사원 1명이 180~600가구 정도를 맡게된다. 단독주택이 많은 곳은 180가구 정도지만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경우 최대 600가구를 맡기도 한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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