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부모님에 대한 추억

TV 광고 중 고3 딸을 위해 바나나 우유를 트렌치코트 안쪽 전체에 달고 나타나는 아버지의 모습이 다소 과장되긴 했으나 아련한 나의 옛추억을 떠올려 주었다. 항상 오후 6시쯤이면 어김없이 독특한 발소리에 우리 4남매는 아버지가 오셨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희한하게도 울 아버지 발소리에는 리듬이 있었다.

아버지는 들어오시면서부터 양 안쪽 주머니에서 땅콩 캐러멜 한 봉지씩을 짠~하고 꺼내신다. 트렌치코트에 바나나 우유는 아니지만 그 시절 내가 느낀 행복감은 마흔이 넘은 아직도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땅콩 캐러멜을 우리 4남매에게 정확하게 배분해 주시고 항상 일정량을 남겨 두셨다. 당신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의 애교만으로도 몇 개의 캐러멜을 더 얻을 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난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군대 얘기 듣기도 좋아했었다. 내게 우리 아버지의 실감나는 군대 일화는 그 시절 어떤 동화책보다 재미있었다. 그런 얘기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겨 죽겠다. 한여름밤 옥상에서의 저녁식사를 위해 손수 전등을 달아주시는 날엔 우리는 어느 부잣집도 부럽지 않았다. 돗자리에 밥상에 백열 전구만으로도 분위기는 끝내줬으니 말이다.

국수를 잘 먹지 않는 나를 위해 따로 밥을 지어주셨던 우리 어머니. 한 번도 귀찮아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추운 겨울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떻게 그렇게나 시간을 정확하게도 잘 맞추시는지, 금방 만들어진 '갱시기국' 한 그릇이면 나는 또 행복이 가득했다.

이렇게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시고도 늘 우리 부모님께선 너희들한테 해준 게 없다고 말씀하신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한없이 사랑해 주시나 싶다. 사실 난 아직도 부모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느끼기에 더욱 부끄럽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게 받기만 하고 되돌려드리지 못하지만 '항상 즐겁게 살아라'는 아버지 말씀은 꼭 실천하려 한다.

지금처럼 언제까지나 두 분이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서로를 위하며 즐겁게 살아가시는 모습이길 바란다. 오늘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어릴 때 먹었던 갱시기국밥이 그리운 하루다.

김건이 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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