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한우의 고장 안동지역을 대표하던 두 마리의 우공(牛公)이 구제역 사태로 생사가 엇갈려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 주인공은 팔순 노부부와 20여 년 동안 애틋한 정을 나눠 '안동판 워낭소리'로 언론에 알려진 '학가산 누렁이'(본지 2월 1일자 8면 보도)와 1천300㎏의 몸무게를 자랑하며 뛰어난 종모우로 성장할 것이란 기대를 모았던 '슈퍼 한우'. 지난달 29일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 사태로 '학가산 누렁이'는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노부부 곁을 떠난 반면 '슈퍼 한우'는 구제역이 발생하기 얼마 전 대구로 옮겨지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노부부와 가족처럼 지낸 22살 누렁이, 구제역 사태로 살처분
안동 북후면소재지에서 꾸불꾸불한 산길과 강길을 따라 5㎞쯤 거리에 자리한 연곡리 끝자락 종실(終室)마을. 이 마을 정봉원(86)·강남순(81) 씨 부부의 가까운 친구이자 경운기와 승용차 역할을 대신하며 22년을 가족처럼 살아온 '안동판 워낭소리'의 주인공 누렁이가 구제역 불똥을 피하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죽음으로 내몰렸다. 인근 지역인 와룡면의 한 한우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반경 500m 이내 가축에 대한 매몰처리가 시작되자 이 누렁이에게도 '살처분 매몰'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처분이 내려졌다.
노부부는 방역 당국과 매몰처리반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사정하고 화도 내봤지만 죽음으로 내몰리는 누렁이의 원망 어린 눈망울을 넋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정 옹은 "나보다 더 오래, 앞으로 20년은 너끈히 살 것 같은 누렁이가 구제역으로 인해 죽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그 아이는 소가 아니라 사람이었어. 사람들이 산사람을 죽인 거야"라며 가슴이 먹먹하고 누렁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눈시울이 붉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을 주민들은 "평소 할아버지는 누렁이가 자식보다 낫다면서 누렁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표현하곤 했다"며 "22년 동안 함께 생활하다 이제 누렁이 없어져 그 허전함이 오죽하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지금도 노부부는 누렁이가 있던 축사와 끌고 다니던 달구지, 먹던 볏짚, 사료를 살펴보다가 눈시울을 적시며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1천300㎏짜리 초대형 슈퍼 한우, "대구로 팔려가 살아남았다!"
안동시 서후면 이계리 권모(54) 씨 농장의 1천300㎏짜리 슈퍼 한우. 초대형 몸무게를 자랑하며 한우 관련 기관들로부터 우수한 송아지를 많이 배출하는 종모우로 성장할 것이란 기대를 모았던 슈퍼 한우가 안동지역 구제역 불똥을 피해 대구에서 살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슈퍼 한우는 구제역 발생 두 달 전인 지난 9월 말 주인 권 씨가 대구의 한 농장주에게 팔아 안동을 떠나는 바람에 이번 구제역 파동에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안동 학가산 자락에서 자라던 이 황소는 판매 당시 48개월이었으며 보통 황소가 비슷한 나이에 700~800㎏ 정도 나가는 것에 비해 2배가량 무게가 더 나가는 초대형이어서 국립축산과학원, 한우개량사업소 등 관련 기관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인 바 있다.
당시 이 황소는 뛰어난 품종으로 종모우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며 대구지역의 한 축산농가에 1천만원이 훨씬 넘는 가격에 팔렸다. 이 황소가 살았던 서후면 이계리 농장은 지난주 구제역 여파로 농장에서 사육하던 한우 100여 마리를 모두 매몰처리했다. 슈퍼 한우의 주인이었던 권 씨는 "여러 가지 이유로 황소를 남의 손에 넘길 수밖에 없었는데 어쨌든 죽음을 면하게 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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