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 사태가 20일째를 맞고 있다. 그동안 안동지역에서만 140여 곳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12만 마리가 넘는 가축들이 매몰 처리됐다. 이제 안동지역에는 소 1만9천여 마리, 돼지 2만3천여 마리밖에 살아 있지 않다.
지금까지 안동을 비롯해 영주·봉화·영양·예천·의성·영덕 등 7개 시·군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 영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에서 첫 구제역 발생지인 안동지역과의 역학관계가 드러나고 있다. 안동의 구제역 감염농장 송아지를 입식했던 영주와 봉화, 안동 농장을 다녀갔던 소 중간상인과 수의사가 들렀다는 영덕, 안동지역 인부가 출입문을 교체 작업했던 예천 등으로 인해 그야말로 안동·안동인들이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역 곳곳에서는 '안동·안동인들을 경계하라'는 말들이 공공연하다. 한마디로 안동은 괴롭다.
◆안동 거주자는 차단하라=벌써 4곳의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1천여 마리의 소를 매몰처리한 예천지역은 안동에 살고 있는 공무원 49명에 대해 '안동에서의 출·퇴근 금지령'을 내려놓고 있다. 예천군은 이들 안동 출신 공무원들을 예천 양궁인의 집과 예천천문과학관 등에 분산 배치해 집단 숙식시키고 있다. 이들은 '안동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수용(?) 생활을 열흘째 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예천지역 구제역 조기 차단을 위해 잠시의 번거로움을 감내하고 있다.
'사람 반, 소 반'이라는 상주지역도 안동 경계는 대단하다. 상주시는 최근 안동지역 구제역 방제활동에 파견했던 5명의 공무원들에 대해 곧바로 업무 복귀를 시키지 않고 서울 근교에서 일주일간 억류(?)시키고 철저하게 방제할 것으로 알려졌다.
◆안동·안동인과 접촉하지 마라=구제역이 경북을 벗어나 전국적인 문제로 불거지면서 안동·안동인들이 어딜가나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반 안동' 정서가 전국적으로 팽배해지고 있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안동', '건강도시 안동', '청정 안동'이라는 지역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최근 안동지역 여행업계는 오사카를 통해 일본으로 입국하려던 5명이 '안동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입국을 거부당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들은 온천여행을 목적으로 서울지역 여행사를 통해 출발했으나 구제역 발생지역 거주자라는 이유로 입국을 거부당했다는 것.
게다가 안동지역에서 출발해 서울 등 타 도시로 운행하는 운송업체 관계자들 사이에는 "안동에서 온 차량 운전자들은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식당에서 밥도 사먹지 못한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또 안동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은 본사 회의나 교육에 참석하지 말 것을 통보 받거나, 이미 오래전부터 강의계획이 수립됐던 인사들의 외부 특강 등이 잇따라 취소되는 등 사례도 빈번하다.
◆안동인도 할 말 있다= 안동인들은 "지금까지 나타난 구제역 발생은 이미 초기 방역단계부터 수의사나 사료차량 등에 의해 전파된 것으로, 이 모든 책임을 안동·안동인들에게 돌리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안동인들은 안동 구제역이 외부로 빠져 나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연일 2천여 명에 이르는 공무원과 경찰, 군인, 시민 등이 참여해 방역작업과 가축 매몰작업에 밤낮없이 나서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매몰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이 구제역 차단에 가장 빠른 대책이기에 쓰러지고, 다치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지만 누구하나 불만없이 묵묵히 구제역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 공무원은 "지난 11월 초기 방역과 검역에서는 문제가 드러나고 있지만 29일 첫 구제역 발생 이후 지금까지 안동에서 구제역 바이러스가 밖으로 빠져 나간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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