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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근대미술의 향기] 배명학의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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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비친 겨울 경치, 수묵화처럼 표현

캔버스 위에 유채, 52×44㎝, 1969.1, 대구문화예술회관
캔버스 위에 유채, 52×44㎝, 1969.1, 대구문화예술회관

자연의 대상과는 완전히 무관하게 만들어져 사물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추상화가 아니라면 자연을 왜곡하거나 축약한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화면에서 공간을 상상할 수 있고 서정적이거나 주관적인 표현의 자연적 대상에 더 잘 감정이입을 할 수도 있는 것이 표현주의적인 그림의 특징이다.

이 작품은 눈 덮인 산과 마을의 모습을 주제로 한 이상적이고 전형적인 장면을 제공한다. 온통 새하얗게 변한 세상과 그 위로 맑게 갠 푸른 하늘색이 대비되는 아름다운 경치를 구상적으로 재현한 것 같으면서 또한 한편으론 마음에 비친 눈 경치의 조화를 그린 추상화인 듯 느껴진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이 소장하고 있는 배명학의 이 그림은 1969년 1월로 서명이 되어있어 40년 전 이맘때쯤 당시 이 고장 어딘가에서 만났을 설 후 풍경 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온 산과 들, 꽁꽁 얼었을 냇물과 그 위로 비치는 하늘빛과 함께 큰 눈에 묻혀있는 마을의 모습까지 어느 한 곳도 구체적으로 특정한 지역을 나타내려 한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마을을 배경으로 뒤에는 높은 산이 둘러있고 앞에는 대각선으로 내가 흐르는 구도는 그의 그림에 간혹 등장하는 구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치 사의적인 남종 문인화에서 산수를 그리듯 탄생시킨 풍경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하늘의 푸른빛과 대지의 흰 눈이 대비되어 차갑고 서늘한 기운을 한층 강화시켰으며 짙은 고동색의 선들이 두 색 사이의 경계를 지으며 혹한의 차가운 기운과 맑고 깨끗한 인상을 함께 높여준다. 그 느낌은 재현된 경치에서보다 최소한으로 제한한 채색과 진동하는 붓놀림의 필치에서 더욱 흠뻑 취하게 한다. 마치 수묵화에서 하듯 기름진 물감을 듬뿍 찍은 붓으로 형태를 그리고 흰색을 사이사이에 덮어 칠하여 색과 선들이 서로 뒤섞이며 전율하는 독특한 리듬을 생성시키는 데 바로 자연의 내재율을 찾는 작가의 노력이다.

자연풍경을 표현주의적 감수성으로 그려낸 것이 특징이지만 형태의 피상적 재현에 얽매이지 않고 내면의 정신적인 태도로 바라본 풍경 같아 서양의 매체를 동양적 미의식과 결합시키고 전통적인 기법을 응용해보려는 의도가 보인다.

일본인 화가들이 중심이 되어 1926년 대구서 결성한 '자토사'의 2회전에 중등학교 생도작품을 함께 참여시켰는데 당시 교남학교 출품자 명단에 배명학의 이름이 보인다. 그 뒤로 영과회와 향토회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그림활동을 시작한 대구미술의 초창기 세대에 해당한다. 그러나 지금 볼 수 있는 작품은 대부분 60년대 말 이후의 것이어서 그의 옛 작품들이 궁금하다.

김영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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