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3년째 회사→클럽→집…아뿔싸! 결혼을 깜빡했네

최송 씨의 유별난 스쿼시 사랑

최송 씨는 13년째 퇴근길에 스쿼시클럽을 찾아 2, 3시간 스쿼시를 즐기며 건강을 다진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최송 씨는 13년째 퇴근길에 스쿼시클럽을 찾아 2, 3시간 스쿼시를 즐기며 건강을 다진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중고자동차 매매 회사에 다니는 최송(37) 씨의 퇴근길은 항상 똑같다. 업무를 끝낸 최 씨가 어김없이 찾는 곳은 대구 달서구 이곡동의 한 스포츠센터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스쿼시클럽이다. 몇 군데 장소를 바꾸긴 했지만 '회사-스쿼시클럽-집'으로 반복되는 퇴근길 루트는 13년째 계속되고 있다.

"다른 운동은 할 줄 몰라요. 오직 스쿼시만 10년 넘게 해왔어요." 우직하다 못해 참 지루할 것 같은 그의 퇴근 후 풍경이지만 최 씨는 전혀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그는 "스쿼시를 하기 위해 술, 담배도 끊었다"고 했다. 아직 미혼인 그를 보면 스쿼시가 그의 '연애'까지 막은 건 아닌지 싶었다.

그는 13년 전인 1999년 11월, 찬바람이 부는 날 스쿼시와 인연을 맺었다. 퇴근 후 직장 상사를 따라 스쿼시클럽에 갔다 스쿼시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주변의 어수선함을 단절시킨 직사각형의 스쿼시 코트(가로 6.40m, 세로 9.75m)에서 라켓으로 지름 4cm 정도의 작은 공을 쫓아 몸을 놀리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한번 쳐보라는 말에 용기를 내 힘껏 라켓을 휘둘렀지요. 힘차게 날아간 공이 벽을 맞자 탄력이 감소돼 한참이나 앞에 떨어지더군요. 한 번이라도 제대로 쳐보자 싶어 연습을 했더니 그 새 온몸이 땀으로 젖는 게 아니겠어요. 이거다 싶었죠."

그 길로 수강신청서에 사인을 하고 스쿼시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후 6시에 도착해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작은 공을 쫓아 다녔다. 실내에서 하는 스포츠다 보니 날씨나 계절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아 매일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꾸준한 연습 덕분에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요즘은 전국적으로도 알아주는 동호회 상위 순위에 올랐지만 여전히 하루 2, 3시간은 스쿼시로 시간을 메운다.

"전혀 지겹지 않아요. 하면 할수록 새로운 재미를 발견해요. 좀 아쉬운 것은 함께 쳐줄 상대가 별로 없다는 것이죠."

부상을 당해도, 감기 몸살이 걸려도 최 씨는 스쿼시클럽 주변에서 맴돌았다. 처음 몇 달 동안은 너무 무리해 허벅지 뒤쪽에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그때도 다리를 절뚝거리며 코트 밖에서 남들의 시합을 보며 아픔을 달랬다. 감기에 걸려 옴짝달싹하기 힘들 때는 아예 땀복을 입고 한 두 시간 스쿼시를 쳤다. 그러고 나면 감기가 말끔히 나았다.

최 씨는 "스쿼시를 거른 날은 하루 일과의 마침표를 찍지 못한 것처럼 허전하다"고 했다.

최 씨가 스쿼시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라켓을 잡은 20대 중반에는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어요. 온갖 좋지 않은 잡념에 시달려 잠을 제대로 이룰 수도 없었죠. 그래서 운동에 더욱 빠져든 것 같아요.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공을 치면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죠. 스쿼시는 힘든 시절을 함께 해준 동반자죠."

스쿼시는 엄청난 운동량 때문에 다이어트 하려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누구든 탁구공만한 공을 두 시간만 쫓아 다니면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쿼시에 입문한다. 그런데 3년 정도면 스쿼시를 그만둔다고 한다. 살을 빼든 건강해지든,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지만 한 단계 실력을 끌어올리는데 커다란 벽이 버티고 있는 탓이다.

대구시스쿼시연맹 최명수 사무국장은 "시작 후 6개월 정도는 적응하느라, 1년까지는 경기의 재미에 빠져 흥미를 이어간다"며 "하지만 3년 정도 되면 상급수준의 실력을 갖추지만 한편으로는 정교한 기술습득의 한계를 느껴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13년을 지속적으로 스쿼시를 즐기는 최 씨는 대단한 마니아임에 틀림없다.

최 씨는 동호인 가운데 대구 최강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2003년 부산시장배 동호인 전국대회 단체전에서 우승한 최 씨는 대구의 각 구청별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여러 번 들어올렸다. 지난해에는 대구시장배 전국스쿼시 동호인대회에서 개인전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전국대회에 나가면 먼저 안부를 묻는 사람이 여럿 있을 만큼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그래서 대구에서는 동호인 중 그와 겨룰 상대가 별로 없어 무료함을 주기도 한다. 승부가 주는 짜릿함은 전국대회에서나 맛볼 수 있다.

최 씨는 드롭샷을 주무기로 하는 테크니션이란 말을 주위로부터 듣는다. 대학교 A급 선수쯤 돼야 최 씨에 도전장을 내밀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재밌는 일화도 있다. 스쿼시 지도자들이 우수 강사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최 씨를 꺾어야 한다. 대구시스쿼시연맹 양효석 전무이사는 "지도자 중 최 씨와 겨뤄 이기지 못하면 B급 강사로 낙인찍힌다"며 "A급 강사가 되려는 지도자들로부터 늘 도전장을 받고 있어 그에게 '자격증 브로커'라는 별명을 달아뒀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최 씨는 승부욕보다는 즐기는 쪽으로 오래 전에 방향을 틀었다. "많은 사람이 스쿼시를 통해 건강해졌으면 좋겠어요."

최 씨는 각종 대회 우승으로 받은 라켓을 주위에 나눠주며 스쿼시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국단위의 스쿼시 동호회인 '다음 한메일 스쿼시동호회' 대구경북지부장으로 활동하며 스쿼시 알리기에 애쓰고 있다.

164cm 59kg의 크지 않은 체격 때문에 더 많이 코트에서 뛰어야 하지만 민첩함이 덩치 큰 상대를 이기는 데 유리할 때도 있다. 최 씨는 "상·하체의 고른 발달과 민첩성, 지구력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스쿼시는 신체조건이나 나이, 성별 등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스포츠"라고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혼인 그가 바라는 배우자의 첫 번째 조건도 함께 스쿼시를 즐길 수 있는 여성이다. 최 씨는 "결혼해서 아내, 아이와 함께 스쿼시를 즐기고 싶다" 는 바람을 전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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