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정치와 상품

잘나가던 독일의 한 소형 오토바이 회사의 매출이 갑자기 격감했다. 아무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불안해진 사장이 전문가에게 원인 조사를 의뢰했다. 구매동기 조사를 실시했더니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그동안 이 회사는 '10년간 보증할 수 있는 오토바이'라는 광고 문안을 써왔다. 품질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독일인의 입맛에 맞는 광고였다.

그런데 조사 결과 소비자들이 오토바이로만 만족하고 있지 않더라는 거다. 꿈이 달라졌다는 말이다. 2, 3년 뒤에는 작더라도 네 바퀴 달린 자동차를 사겠다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데도 '10년 보증 오토바이' 광고만 줄곧 해온 것이다. '지금은 10년 넘게 쓰는 오토바이를 살 때가 아니다'는 소비자들 생각을 몰랐던 것이다. 이에 광고 문안을 바꾸고 오토바이 디자인도 바꿔 자동차 이미지를 입혔더니 다시 매출이 올랐다. 다고 아키라의 책 '심리학 콘서트'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는 '잘 팔리는 상품은 그 유용성보다 대중이 갖고 있는 이상이나 희망을 실현해 주는 상품'이라고 정의했다.

청와대가 격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대통령에게 지지율을 보고하고 있다는 보도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47, 48%를 오르내리고 있다는데 체감 지지율은 바닥권이라고 걱정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심리 분석 연구 용역까지 줘 최근 결과 보고서도 나왔다고 한다.

집권 4년차 조기 레임덕 말이 나올 만큼 민심이 바닥을 헤매는데도 청와대는 '열심히 일하면 된다'며 애써 무시하는 분위기다. 어저께 국무회의에서도 대통령은 소신을 갖고 '일하는 정부'를 만들기 위해 매진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성장도 하고, 물가도 잡고, 수출도 늘리고, 일자리도 만드는 등 '일하는 정부'는 일에 올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일하지 않는 정부를 바라는 국민은 없다. 하지만 국민의 꿈과 희망이 '일하는 대통령, 일하는 정부'로 만족할지는 의문이다. 보고서에 "국민은 더 이상 7급 공무원 같은 대통령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표현도 있다고 한다.

친서민, 공정 사회, 물가, 구제역, 일하는 정부 그 무엇이든 좋다. 하지만 국민이 진정 바라는 게 뭔지 그 꿈을 헤아리지 못하면 오토바이 회사와 같은 처지가 된다. 지지율과는 동떨어진 바닥권 민심은 국민의 꿈과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에 대한 외면 아닐까. 정치도 상품이기에 하는 말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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