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에 붙어 오래 비어있는 한 칸 전세방, 가로등 불빛 길다랗게 늘어져 있다 날마다 빈 방엔 저절로 불 켜졌다 꺼지고, 오늘도 만삭의 달만 소리 없이 누누이 묵어간다 경계 없는 허공의 저 방, 별똥별 근심처럼 쏟아져 내리고 기억 속 슬픈 애인은 몇천 번 스쳐가고 오는데 저 홀로 든 달빛인 양 쓸쓸하다
설운 몸뚱이 가누기조차 힘든 노숙하던 한 영혼 어둠에 실려 간다 전봇대에 붙어 오래 비어있는 한 칸 전세방 전단 바람에 만장처럼 바람에 나부낀다
노현수
요즘 전국이 전세대란이라는데. 몇 년 전 입시 끝난 이맘때, 아이를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며 '방 한 칸'의 리얼리티를 느낀 적이 있다. 요즘 말로 원룸인가. 방을 보러 다니던 객지의 하루, 매 순간 매 상황에 쓸쓸함은 질병처럼 끼어들어 아이와 나를 말 없게 했는데, 서울이라는 곳 더하여 피부로 느껴지는 자본의 위력은 우울하고 치사했다. 그날 '방 한 칸'의 공간에 아이를 누이고 돌아오는 마음이라니.
삶의 곤고함은 우리 옆 골목 어디에나 있다. 전봇대에 붙어 펄럭이고 있는 전단지는 이 시대 욕망하는 우리들의 초상화가 아닌가. '나 여기 있어요' 하는 방(榜), 호객행위처럼 처량하다. 그러나 우리는 방 한 칸에 불을 켜고 몸을 뉘어야 하리라. 밤이면 기어들어 삶을 확인해야 하리라. 생이 얼마나 엄격하고 냉정한지 뼈아프게 느껴야 하리라.
자본주의의 달이여. 어쩌랴 그마저 공평히 비치는 게 아니라 차고 이지러져 스쳐간 애인인 양 쓸쓸하다니, 쏟아지는 별똥별마저 근심으로 읽힌다니, 골목길 방 한 칸의 비애여. 그러나 위태롭고 가련한 저 존재들의 처소는 어쩌면 망망대해를 가기 위한 임시거처이리라. 비상하기 위한 웅크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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