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밤 11시 20분 대구 수성구 두산동 유흥가 밀집지역. 커다란 전광판과 반짝이는 네온사인이 길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았다. 10분 뒤 수성구청과 시청 직원 5명이 유흥주점의 간판들을 훑어보더니 한 유흥주점으로 들어섰다. 한 직원이 주인에게 "새벽 2시부터 간판 조명을 모두 꺼주세요. 알고 계시죠"라고 묻자 주인은 "새벽까지 장사해야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소"하며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다른 가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정부가 에너지 절약을 위해 이달 1일부터 에너지 경보단계를 '주의'로 상향조정하고 야간 조명을 의무적으로 끄게 하는 등 에너지 절감 대책을 발표한 지 1주일이 넘었다. 위반하는 업소나 사업장은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14일부터 시작될 단속을 앞두고 각 구청은 계도활동에 나섰지만 유흥주점들은 에너지 절감 대책이 불공평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단속반은 한 나이트클럽에 들어갔다. 커다란 전광판과 오색찬란한 네온사인으로 치장한 건물 외부를 지나 내부로 들어서자 안내직원에게 홍보 전단지를 나눠줬다. 나이트클럽 직원은 "이미 언론을 통해 알고 있다. 지난주부터 새벽 2시에 불을 모두 끄고 장사를 하고 있지만 영업에 지장이 있으니 빨리 나가달라"고 대꾸했다.
나이트클럽에서 나와 인근 유흥주점으로 이동하던 중 시청 직원이 내부가 환하게 빛나고 있는 수입차량판매소를 발견했다. 직원은 "자동차판매업소는 영업시간 외에는 실내 및 상품진열장 조명을 꺼야 한다"며 "국산 자동차 판매장은 본사에서 알려줘 잘 따르고 있지만 수입 자동차 판매장은 아직 홍보가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자정이 넘어서자 아파트와 오피스빌딩 등의 경관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화려한 조명빛 속에 있던 황금네거리 일대가 순식간에 깜깜해졌다. 하지만 몇몇 은행과 오피스텔 경관 조명 등은 여전히 켜진 상태였다. 수성구청 직원은 "오늘 조명을 끄지 않은 곳은 다음날 연락을 취해 조명 소등에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다수 유흥업소들은 정부의 에너지 절약 방침에 마지못해 동참하는 분위기였지만 매출감소로 이어져 힘들다고 했다.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우정행(45) 씨는 "새벽 2시면 한창 영업할 때인데 소등하라는 것은 가게 문을 닫으란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다른 업소 주인 A(45) 씨는 맞은편 불이 켜진 국회의원 사무실 간판을 가리키며 "우리야 장사 때문에 조명을 켜놓는다지만 사람도 없는 사무실 간판은 왜 밤새 켜 놓느냐. 정부가 서민들만 옥죄고 있다"고 꼬집었다. 다른 상인도 "가뜩이나 물가가 올라 영업이 힘든데 정부의 규제에 장사하기가 어렵다"고 한숨쉬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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