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힘내라, X세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어느 날 일이다. 출근해서 그날 처리할 일들을 이것저것 들춰보고 있는데, 지나시던 회사 어른께서 인사차 물으셨다. "그래, 요즘은 무슨 재미로 살고 있습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다지 재미있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했지만, 참 재미없는 대답이었다. 삶의 열정이라곤 없어 보이는 한심한 발언에 아차 싶었지만,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약속이 있던 날 일이다. 어디서 만날지 잠시 고민하다가 주차가 용이한 식당으로 약속을 정했다. 늘 가던 곳, 먹던 음식이지만 약속 장소를 정하는데 크게 중요한 요인은 아니었다. 하나 둘 모인 친구들과 안부를 묻는다. "그래, 어떻게들 살고 있냐?" 상투적 질문에 다들 입을 맞춘 듯 대답했다. "그저 그렇지 뭐, 사는 게 다 똑같지." 자조 섞인 기성 세대적 표현들이 식당을 가득 채웠다. 아직 이럴 나이는 아니다 싶지만, 무언가 허전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경험들 때문인지는 몰라도 최근 내 삶의 화두는 '과연 나는 나로서 잘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성공보다 내면적 성찰 차원의 문제다. 사회적으로 볼 때 3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세대들은 열정을 가지고 가장 열심히 사회에 뛰어들고 있을 사람들이다. 젊음과 능력, 열정이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추고, 아직까지 스스로를 기성세대라고 인정하지 않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사회적 평가이지 이들의 내면적 자각과 실천도 그만큼 적극적인가는 좀 더 생각해 볼 일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X세대였다. 한국사회에서 ○○세대라고 처음 명명될 만큼 특징적이었던 그 X세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X세대는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개성파이고,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했던 세대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었던 세대였다. X세대의 특징은 흔히 PANTS로 요약한다. Personal(개성화), Amusement(즐거움 추구), Natural(자연에 대한 욕구), Trans-border(경계 초월), Service(고감도, 하이테크 추구)를 지향한다는 뜻이다. 물론 1990년대 후반 IMF 경제위기로 한 풀 꺾이긴 했지만, 이전 세대와 전혀 다른 특성의 신세대였음은 분명하다. 상표를 붙인 옷을 입고 파격적인 음악과 춤으로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우리 세대의 우상이었고, 70, 80년대 한국사회를 억누르고 있던 이데올로기 논쟁조차 과감히 거부해 선배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 또한 우리였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좀 달라졌다. 무엇을 재미있어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잘 모르겠다. 새로 나온 홍콩 누아르에 열광하고, 일본 만화에 집중하고, 캠퍼스 문화의 상징이었던 통기타를 과감히 없애버릴 만큼 오만한 취향을 가진 나였지만, 이제는 대충 편한 곳으로 약속 장소를 잡고,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다 남들이 가는 곳을 선택한다. 사는 게 다 똑같다는 말에 쉽게 공감하는 친구들을 보면, 평범함을 거부하고 반항하던 우리가 맞나 싶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때의 X세대도 기성세대가 된 것 같다.

물론, 사회의 중추적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우리 모습은 결코 나쁘지 않다. 보다 큰 차원에서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과감히 투자하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바쁘게 살다 보니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여력이 부족했을 뿐이라고 본다. 이는 X세대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심리적 차원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재미있어하는지를 모른다고 해서 문제 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간혹 서글퍼지는 이유는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나' 사이에 느껴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간극 때문이다.

열심히 살지만, 점점 공허해지는 현실에 막막할 때가 한 번씩 있다. 나 또한 색깔 없는 기성세대가 되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X세대였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내가 과연 '나'처럼 살고 있는가에 아직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면 마냥 우울하지는 않다. 인간의 힘이 어느 때보다 약해 보이는 지금,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삶을 더욱 절실히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끊임없이 내 삶에 질문을 던지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사회적 행로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다. 힘내라, X세대.

김성애(대구경북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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