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쓰나미 봤제"

최근 며칠 동안 우리는 마치 다른 혹성(惑星)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아무리 상전벽해라지만 힘들여 쌓아올린 인간의 문명이 자연의 힘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현장을 너무나 생생하게 목도한 것이다. 물론 역사책에 그런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과학책 한 귀퉁이 '자연재해' 부분에 짧게 다루어진 지진'쓰나미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모든 것이 우리와는 별로 상관없는 남의 일인 줄로 알았는데 이제 그 가정(假定)이 여지없이 깨져버린 것이다.

서기 79년 이탈리아의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을 때 플리니우스 해군사령관은 현장에서 멀지 않은 항구에 있었다. 그는 화산 부근에 사는 친구로부터 "달아날 길은 바다밖에 없다"는 편지를 받고 함대를 출동시킨다. 그러나 화산재와 뜨거운 용암 때문에 근처에 접근도 하지 못했다. 화산 폭발은 이렇게 달아날 곳이라도 있지만 높이 10m에 시속 700㎞로 쳐들어오는 물 폭탄 앞에서 인간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임을 이번 일본 대지진이 다시 한 번 각인시켜준 것이다.

지난 2004년 22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동남아 대지진 때만 해도 그런 재해는 우리와는 아주 먼 거리에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재해가 지금 바로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의 앞마당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우리를 엄습하고 있다.

부랴부랴 경북 동해안도 지진'해일에 안전하지 못하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동해에서 리히터 규모 7의 강진이 발생하면 동해안 100m 이내 연안 도시가 모두 물에 잠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도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는 고리'월성'울진 등이 동해안에 밀집돼 있다. 최악의 경우 어떻게 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이런 와중에 대구경북 주민은 동남권 신공항 입지를 떠올린다.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은 재해 앞에서 이런 지엽적(?)인 생각을 끄집어내는 것이 도리가 아닌 줄은 알지만 해안에 위치한 국가 기간 시설이 자연재해 시 얼마나 취약한 것인가를 이번 사태가 똑똑히 보여준 것이다.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때, 쓰나미 봤제?"

윤주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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