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시절입니다. 옛날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역대 정권에서 대구경북은 '빛 좋은 개살구'였다. 겉보기에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실속은 전혀 없는, 허풍선이나 다름없었다. 소위 TK정권이라는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는 대구경북이 그 수혜를 조금이라도 받았을까 싶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목소리 큰 전라도와 충청도에 국책 사업이 집중됐다. 정권 핵심부는 대구경북에 대해선 '남도 아닌' 같은 편이고 표가 더 나올 것도 아닌데 한정된 재원을 분배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노태우 정권 후반에 '훗날 고향에 얼굴 들고 못 갈 것'이라는 압력에 밀려 삼성상용차를 내려 보냈지만 그마저 얼마 지나지 않아 파산했다.
김대중 정권 때는 지금보다 상황이 좋았다. 대구를 이탈리아 밀라노 같은 패션산업 도시로 만들겠다며 '밀라노 프로젝트'에 1조 원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다. 경북에는 '유교문화권 사업'이 가동됐다. 큰 예산이 필요한 대형 국책 사업은 대통령의 결단에서 나오는 게 상식이다. DJ는 평생 대구경북에 어느 정도 피해 의식을 갖고 있었기에 적지 않은 정책적 배려를 했다고 한다. 노무현 정권 때는 일부에선 '정치 쇼'라고 평가절하하지만 공기업 이전, 분권 정책으로 지방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옛날 얘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요즘 정부'여당의 행태와 너무나 비교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을 TK정권으로 분류할 수 없겠지만 대구경북이 정권 탄생에 적지 않게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지역민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다. 지역 출신 일부 인사들이 출세했다는 말은 귀가 따갑게 들었지만 대구경북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거나 나아질 기미가 보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대형 국책 사업이라고 생색 내며 내려준 것이 첨단의료복합단지이지만 충북 오송과 나눠주는 바람에 기업 하나 유치하지 못하고 있다. 4대강 사업도 대기업 건설사의 잔치일 뿐이다. 예전에 대구경북 출신들이 입만 떼면 욕해온 과거 정권들보다 나을 것이 전혀 없는 현실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지역민의 마음을 더 쓰라리게 하는 것은 영남권 신공항 문제다. 지난해 말 입지를 결정하면 될 터인데 시간만 질질 끌다가 오히려 부산과 싸움만 붙여놓았다. 지금까지 대구경북에서 지도층 인사들이 삭발하고 혈서 쓰면서 일치단결해 목소리를 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던가. 지역민들이 체면 불구하고 자신들의 문제에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부'여당에서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이런 결단조차 내리지 못하는 이 정권을 더 믿고 있어야 될지 모르겠다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요즘 정부'여당 관계자들이 심심찮게 '신공항 무용론'을 끄집어내는 것은 결코 우연한 게 아니다. 정권 핵심부의 철학 부재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신공항 유치 운동을 열심히 해온 한 인사의 토로다. "한나라당에는 애당초 '지역'이란 개념이 없어요. 겉으로는 경제성, 효율성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수도권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인사가 대부분이라는 데 너무 놀랐습니다." 정부'여당 핵심부는 인천공항 하나면 충분한데 무엇 때문에 승객을 나눠가며 '제2관문 공항'이 필요하냐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수도권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 수 없고 분배는 더더욱 안 되며 지역민이 불편을 감수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고 한다면 한나라당은 수도권을 위해 존재하는 정당일 뿐이다.
지역민의 정당한 요구와 여론을 무시하는 정당이라면 아예 눈앞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국민의 이목을 속이지 말고 당헌'당규를 고쳐 수도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정당임을 널리 선포하는 것이 솔직한 태도일 것이다. 이달 30일 신공항 입지 결정이 발표되면 정부'여당의 실체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싶어 두려워진다. 결코 원하지 않는 결과지만, 영남권 신공항이 잘못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당당하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나라당은 대구경북에서 떠나 주세요."
박병선(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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