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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산책] 만화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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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타공인 먹는 것에 투지가 약한 편이다.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러 쉽게 수저를 놓는데 한 친구는 내가 '배설'을 잘 하지 못하는 탓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화장실 가는 횟수가 확연히 적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넌 무슨 '로열 키드니'(royal kidney:의전 때문에 영국 왕실에서는 신장을 훈련시킨다고 한다)냐고 친구는 늘 나만 보면 놀려댄다.

도대체 왜 이렇지, 온갖 것들을 다 유추해 보다가 엉뚱하게 내가 어릴 때부터 군것질을 별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떡볶이, 핫도그, 만두, 튀김…. 수없이 많은 군것질거리가 오가는 길에 지천에 널려 있었건만.

그러다가 '탁' 떠올린다. 나는 용돈의 거의 90% 이상을 '만화방'에서 써버렸던 것이다. 글자를 깨치기 시작한 때부터 어두컴컴한 '오뚝이할매 만화방'이나 간판도 없던 '김씨 만화방' '양지모롱이 만화방'까지 나는 저 미야모토 무사시나 최배달처럼 온 동네의 만화방을 순례하듯 거의 모든 신간 만화들을 섭렵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러니 무슨 군것질을 할 수 있었으며 그것이 또 뭐 그리 중요했겠는가.

만화 '수호지'의 고우영이 '추동성'이란 예명으로 펴냈던 '짱구박사'부터 땡이의 임창, 엄희자 그리고 번안 각색인 줄도 모르고 빠져들었다가 일본 만화인 줄 뒤늦게 알고선 정말 울고 싶었던 미우치 스즈에의 '유리가면' '은발의 아리사'를 어린 나는 보고 또 보았다.(아,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전문가총회에 참석했을 때 스즈에가 사이비종교에 빠져 있다가 뒤늦게 그 미완의 유리가면을 다시 재개하기로 했다는 걸 어느 만화가에게 듣고 얼마나 흥분했던지.)

고등학교 때 사촌 미미언니가 물려준 '캔디' 원작 만화 9권은 내 보물 중의 하나였다. 이케다 리요코의 '올훼스의 창' '베르사유의 장미'는 또 어떠했는가.(이 만화는 결국 나를 파리로도 가게 만들었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 '북해의 별' '불의 검' '오디션'의 신일숙, 김혜린, 천계영은 나를 또 만화에 들뜨게 하더니, '미스터 키튼' '몬스터'의 우라사와 나오키, '시마 과장'의 히로카네 겐시는 불혹의 나를 또 열광시켰다. 아기 다다시의 '신의 물방울'도! 아아, 지면이 다 되어가니 서둘러 밝히겠다. 만화는 세상의 모든 군것질보다 더 달콤하게 나를 독서로 이끈 단초(端初)이며, 희열(喜悅)이었으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만화는 나를 시(詩)도 쓰게 만들었다!

박미영(시인, 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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