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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거짓말, 말 바꾸기 난무하는 사회

드라마 대물 장면-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드라마 대물 장면-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대물'은 거짓말과 계략이 판을 치는 기성 정치판에 신선한 여성 정치인이 등장, 소신을 지켜가면서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스토리를 전개해 시청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밑지고 판다"는 장사꾼의 말과 "시집 안가고 혼자 살 거야"라는 노처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뻔한 거짓말쯤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상대방을 배려해서 하는 선의의 거짓말과 인사치레 또는 덕담으로 건네는 거짓말은 때론 듣기 좋다. 하지만 대부분의 거짓말은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거나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악성 거짓말이 우리 사회에서 판을 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말 터진 쥐식빵 자작극 사건. 경기도 평택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김모(36) 씨는 자신의 빵집에서 죽은 쥐를 넣어 빵을 구운 뒤 인근 경쟁업체 빵집에서 구입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다 들통이 나 경찰에 붙잡혔다.

최근에는 대통령마저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바람에 말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대한 대통령 기자 회견을 본 국민들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애초에 지키지도 못할 말을 했다는 사실에 더 분개했다.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말이 나오고 국민들의 실망감이 극에 달한 이유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뻔한 거짓말과 말 바꾸기의 현주소를 짚어 봤다.

◆난무하는 뻔한 거짓말

"한푼도 받지 않았다"(뇌물 수수 정치인) "출발했어요. 5분 안에 도착합니다"(중국 음식점) "한 잔밖에 안 마셨어요"(음주 단속에 걸린 운전자) "학교 수업만 열심히 받았어요"(수능 수석 수험생) "지하철 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 성공 투자 보장"(아파트'상가 분양 광고) "마지막으로 한마디"(조회 때 교장 선생님) "친구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 없어요"(열애설 불거진 연예인) "전원 취업 보장. 전국 최고 합격률"(학원 광고)

대표적인 뻔한 거짓말 사례로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것들이다. 눈에 보이는 뻔한 거짓말이 성행하고 있다. 일상 속에서 다반사로 이루어지다 보니 감각마저 무뎌져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정도가 돼버렸다. 뻔한 거짓말은 부모와 자녀, 부부 사이, 직장 상사와 직원들의 대화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해 캐이블 방송 tvN은 '재밌는 TV 롤러코스터-일상 탐구생활' 프로그램을 통해 부모와 자녀가 주고받는 뻔한 거짓말을 공개했다. 자녀들이 하는 대표적인 거짓말로는 나쁜 짓을 하다 걸렸을 때 "친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거다", 밖에서 늦게까지 놀고 와서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게임하다가 걸렸을 때는 "지금 막 시작한 거야" 등이 꼽혔다. 반면 부모들은 "세뱃돈 나중에 줄게" "엄마는 어렸을 때 공부 잘했어"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등의 뻔한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포털 이지데이가 지난해 5월 누리꾼 2천71명 대상으로 '부부 사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을 주제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5%가 남편이 아내에게 하는 거짓말로 '일찍 들어갈게'를 꼽았다.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거짓말로는 '이거(구두'옷'가방 등) 싼 거야'(46%)가 1위에 올랐다.

구인 과정에서도 거짓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채용포털사이트 사람인이 지난해 8월 기업 인사담당자 5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34.5%가 거짓말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거짓말 유형으로는 '연락드리겠습니다'가 59.5%(복수 응답)로 가장 많았고 '곧 또 뵙겠습니다'(25%), '직원간 분위기가 좋은 회사입니다'(23.5%), '다들 훌륭한 인재라서 고민이군요'(22%), '자기소개서가 인상적이군요'(10%), '업계 최고 수준의 연봉입니다'(8%) 등이 뒤를 이었다.

◆정권 차원에서 공공연히 이뤄지는 말 바꾸기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뿐 아니라 세종시 건설, 과학비즈니스벨트 선정 등의 대형 국책사업을 둘러싼 마찰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는 정부의 잦은 말 바꾸기 때문이었다. 교수신문이 지난해 사자성어로 '장두노미'(藏頭露尾'머리는 숨겼지만 꼬리는 숨기지 못하고 드러낸 모습)를 선정한 것도 투명하지 못한 MB 정권의 태도가 원인이었다. '장두노미'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이승환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민간인 불법사찰, 한미 FTA협상, 새해 예산안 졸속 통과 등 수많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는 진실을 덮고 감추기에 급급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뻔한 거짓말과 말 바꾸기로 낭패를 보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김태호 전 경상남도지사는 지난해 국무총리 후보자로 임명됐지만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말 바꾸기를 자주 하는 바람에 낙마했다. 방송인 신정환도 해외 원정 도박 혐의가 불거지자 "카지노에 간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 관광 목적이었으며 뎅기열에 감염돼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며 말 바꾸기를 하다 국내 언론의 현지 취재 결과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고개를 숙였다. 개그맨 이혁재와 배우 최철호는 폭행사건 연루설에 거짓 해명을 하다 들통이 나 방송가에서 퇴출됐다. 또 가수 유승준은 군 입대를 약속했다가 이를 뒤집는 바람에 한국에서의 연예 인생이 끝났다.

◆왜 거짓말을 할까?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거짓말에는 자기 보호 목적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눈앞에 닥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것.

'거짓말 심리학'을 저술한 일본의 심리학자 시부야 쇼조는 "사람이 강한 불안을 느끼면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고 파국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재(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취하는 행위)가 발동되면서 거짓말을 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거짓말의 진화'를 쓴 엘리엇 애런슨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 거짓말과 변명이 성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거짓말하는 사회'를 쓴 독일의 역사학자 볼프강 라인하르트는 "거짓말이 구조화된 사회가 더 큰 문제다. 거짓말을 부추기고 거짓말에 무감각하게 되는 현대 사회의 구조에 대해서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해법은?

찰스 포드 미국 앨라배마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왜 뻔한 거짓말에 속을까'라는 저서를 통해 다양한 처방을 내리고 있다. 찰스 포드 교수는 "거짓말이 타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판단하고 자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악의 있는 거짓말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고 인간 관계를 깨뜨릴 수 있다. 거짓말이 어떻게 부정적인 효과를 초래하는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거짓말은 주변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등 주변인물들에 대한 관찰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성미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을 가졌거나 관심 받고 싶어하고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강한 자기애적 성격의 소유자들이 거짓말을 많이 한다"며 "또 제어가 되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병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병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에는 정신 장애가 있는지 살펴서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많은 사람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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