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나는 나뻐

방사능 비가 내리던 날, 너무나 우울하여 나는 모든 약속을 다 파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창백한 드라큘라 백작에게 피가 필요하듯 난 술이 더 필요해!'를 외치며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 들고 들이켜다 이 노래가 생각나 튼다.

'나는 나뻐 난 이기적 난 이기적/ 쉿! 내버려 둬// 나는 나뻐 입장 바꿔 생각하니 나는 나뻐// 실수에 실수가 반복된다면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제일 먼저 벗어라 더러운 가면/ …// 반복되는 실수도 지겨워 난/ 새롭게 엎친 데 겹치는 고난에 고난/ 어디로 튈지 모르는/ ….'

그리고 한손으론 술병을 다른 한손으로 작은 스피커를 짚고 장단을 맞추며 마신다. '나는 나뻐'를 끊임없이 읊조리는 저 시니컬하기 짝이 없는 양동근 청년을 따라서. '그렇다. 나는 나쁘다. 온갖 욕망에 뒤덮인 지구인의 일원인 더러운 어떤 덩어리이므로' 랩을 한다. 20세기인들은 자원 고갈과 오염의 주범으로 끊임없이 후손들의 지탄을 받을 것이다.

점점 취기가 오를수록 방사능 비, 도쿄원전이 생각 나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도대체 진짜 누(累)가 무언지도 모르는 매뉴얼, 시스템 경화증에 걸린 이웃나라의 저들은 어떤 덩어리들인가. 더군다나 태평양을 온통 오염시킨 도쿄전력의 창립자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살육을 주도한 인물이라고 하니 더욱더 기가 막힌다. '실수에 실수가 반복된다면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저들을 향해 외치듯 소리를 높여 따라 부른다.

인류의 진화? 진보라고? 세계 최고의 부(富)를 축적한 나라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이재민들을 내몰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으니 무조건 참으라고 그 정부는 강요했다 한다. '제일 먼저 벗어라 더러운 가면' 또 술을 마신다.

세계에 된통 메이와쿠(弊'폐)를 끼쳤음을 왜 저들은 모르는 걸까. 그토록 중요시한다는 체면이라는 게 저들에게 있다면 이 와중에 이웃나라들과 영토 분쟁을 벌여서 될까. 어쭙잖게 모노노아와레(憐愍'연민)를 표현했던 마음들을 생각하니 부끄럽고 슬퍼 마시고 또 마신다. 마치 '어린 왕자'의 술 취한 게 부끄러워 계속 술을 마신다던 그 주정뱅이처럼. 그러다 저 밑에서 부정할 수 없는 내 DNA가 술 마시고 랩 하는 내게 아주 심각하게 묻는다. 정말 지구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박미영(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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