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과 2006년 연이은 패권의 위업을 달성한 삼성 라이온즈는 본격적인 전용구장 마련에 박차를 가했다. 대구시의 새 야구장 건설 의지도 있었지만 삼성은 실력에 걸맞은 명문구단으로서의 위용을 갖추어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것이다. 공청회가 열렸고 돔 형태의 신축구장도 계획됐다. 그러나 민간사업자 유치가 무산되면서 이후 별 진전이 없다가 2009년 10월 포스코건설과 양해각서(MOU)가 체결되자 삼성은 야구장 건설이 본 궤도에 올랐다고 판단해 중장기 플랜을 수립했다. 마침 이 시기가 선동열 감독이 5년을 재계약한 지 석 달 가까이 지난 시기였다. 어차피 야구장신축에 4, 5년이 걸린다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 새로운 전성기를 준비하자"는 취지였다.
이때 5년 뒤 차기 감독으로 물망에 오른 감독이 이만수와 함께 이승엽, 양준혁 등이었다. 프랜차이즈 스타를 감독으로 영입해 야구 붐을 재건하자는 야심 찬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 발상은 사실 이전부터 삼성 프런트의 고심 대상이었다.
선동열 감독의 재계약이 이루어지기 직전까지 삼성은 이만수를 감독으로 영입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성적에 관계없이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처럼 지역 팬들의 기대에 맞게 이만수를 감독으로 영입해 비로소 진정한 공감대를 형성할 때가 아닌가하고 검토를 반복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진행되어온 세대교체에 무게를 두고 선동열 감독을 선택했다. 프런트는 5년 뒤를 기약한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의 일을 누가 알겠는가?
몇 달 뒤 포스코건설의 야구장 신축계획은 조건이 맞지 않아 무산되고 말았고, 5년 뒤의 장밋빛 계획도 다시금 퇴색되고 있었다. 이 일이 진행되던 2009년 류중일 코치는 2군에 내려가 있었다. 처음으로 2군으로 내려간 류중일 코치는 내심 사표를 준비하고 있었다.
삼성 코치로 몸담은 이래 쓴 세 번째 사표였다.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에서 강명구의 주루사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준비했고 프런트와 뜻하지 않은 오해가 발생하면서 그만두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이번엔 새로운 팀으로 이적해 인생의 또 다른 전기를 마련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만큼 2군행은 그로서는 충격이었다. 수비 코치로서는 어느 팀에든 환영받을 류중일이었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구단이 발칵 뒤집혔다. 주위의 선배와 구단의 만류의사도 거셌다. 결국 세 번째 시도도 무산되었고 그해 그는 2군에서 값진 경험을 얻었다.
2010년 12월 7일 수성구 대공원역 주변으로 2만5천석 규모의 오픈야구장을 짓는다는 계획이 발표되고 3일 뒤 류중일 코치는 13대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지명됐다. 뜻밖이었다.
이만수의 감독영입을 고려하다 선동열 감독을 재계약하고 5년 뒤 신축구장에서 프랜차이즈 스타급 감독영입을 계획했던 1년 뒤 상황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돌변해 버리고 말았다. 꿋꿋이 자리를 지킨 류중일 감독의 승리였다.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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