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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의 시와 함께]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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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

-오규원

라일락 나무 밑에는 라일락 나무의 고요가 있다

바람이 나무 밑에서 그림자를 흔들어도 고요는 고요하다

비비추 밑에는 비비추의 고요가 쌓여 있고

때죽나무 밑에는 개미들이 줄을 지어

때죽나무의 고요를 밟으며 가고 있다

창 앞의 장미 한 송이는 위의 고요에서 아래의 고요로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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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내 시 속에 와서 머리를 들이밀고 무엇인가를 찾지 마라. 내가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것은 없다. 있는 그대로 읽으라. 내 시는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모든 존재 하나하나가 도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진리다)의 세계다. 모든 존재가 참이 아니라면 그대도 나도 참이 아니다." 시인이 평생을 바쳐서 이루어낸 시론이 '날것의 이론' 이었는데.

그렇다면 고요는 그냥 고요, 나무는 그냥 나무. 지금은 라일락의 계절, 뭔가 흔들리고 있는데. 라일락 아래는 '라일락의 고요', 비비추 아래는 '비비추의 고요'.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는 당신의 고요, 슬픔에게는 슬픔의 고요랄까. 그런데 라일락의 제 일 이미지인 향내를 맡으려 난 혼자 끙끙. 최대한 주관을 배제하는 이 객관의 묘사를 해석하려 들지 말자. 난 벌써 관념의 노예일까.

장미 한 송이가 질 때 우주는 순간 적막이리라.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꽃이 지고 있으니 조용히 좀 해 주세요." 꽃피는 일보다 지는 일의 엄숙한 도리를 위해 우리 경배하자. 그런 다음, 지는 꽃 아래서 우리 한번 꽃보다 고요히 울자. 울어보자. 당신 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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