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한구석에 앉아 최형우가 아령을 들고 가벼운 손목운동을 한다. 지금은 팀의 4번 타자지만 그에게도 벼랑 끝으로 내몰린 시기가 있었다. 더는 쓸모가 없다는 판정을 받고 경찰청으로 떠나 절치부심의 과정을 겪었던 그다.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이 절벽처럼 느껴지는 고난의 시간은 겪지 않은 사람은 알 리가 없다.
그래서일까? 컴백 후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지만 최형우는 침대에서 스냅운동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뒤에서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룸메이트 배영섭이다.
올해 들어 삼성 라이온즈의 첨병으로 나선 배영섭이지만 아직은 그다지 크게 알려진 선수는 아니다. 그러나 배영섭도 최형우만큼이나 선택받지 못한 자의 아픔과 나락을 이미 경험했다.
유신고 시절 나름대로는 호타준족의 가능성을 보였지만 기대와 달리 그는 프로의 지명조차 받지 못했다. 동료였던 최정은 SK의 지명을 받았는데, 그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배영섭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키 178cm, 몸무게 78kg의 평범한 체격 조건 등으로 발전 가능성이 적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었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고 통뼈를 가진 만큼 파워에도 자신이 있었는데 앞길이 막막해지자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며칠을 펑펑 울고 말았다.
배영섭의 집안은 그다지 넉넉하지 않아 자신의 뒷바라지 때문에 큰누나가 대학 진학을 포기한 아픔을 되갚을 길이 영영 사라진 것 같았다.
이대로 멈출 수가 없었다. 동국대로 진학한 그는 오직 자신의 한 가지 장점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빠르게 뛰는 것이었다. 뛰고 또 뛰면서 야구센스도 빠르게 늘어갔다. 그리고 1년 뒤 도루왕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동국대의 이치로"란 별명도 얻었다.
빠른 발은 외야수비 능력에도 변화를 주어 국가대표로 발탁되면서 이번에는 스카우트의 주목을 제대로 받기 시작했다. 마침내 삼성 라이온즈의 지명을 받았다. 2차 4번의 지명은 외야수로서는 최고의 발탁 순번이었다.
지난해 혜성처럼 나타나 삼성 라이온즈의 히트상품으로 시선을 끌었던 오정복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팀에서 라이벌로 생각하는 선수는 누구인지?" 기자는 최형우나 박한이를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대답은 의외였다. "배영섭이요."
오정복은 국가대표팀에서 함께 뛰어본 배영섭의 진가를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어깨 수술 후 1년의 재활훈련을 거쳐 2군에서 적응기를 거치는 때라 기자에게 배영섭은 생소한 이름이었다.
올해 본격적으로 1군무대로 진출한 배영섭은 12경기에서 첨병(1번 타자)으로 나서 7승을 견인했다. 68타석에서 병살타 1개만 기록할 정도로 빠름의 가치도 선보였다.
체격에 비해 손발이 모두 크고 통뼈여서 손목 힘이 강하고 빠른 주력을 가졌다. 또한 공격적이고 두려움이 없다. 첨병인 1번 타자로는 제격인 것이다. 미남은 아니지만 올 시즌 삼성의 새로운 히트상품으로 기대를 걸만하지 않겠는가?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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