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이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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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당신을 만났지요

 나는 당신의 등뼈를 본 첫 번째 사랑이지요

 당신의 등뼈에 붙은 살이 얼마나 얇은지 알고 있는 사랑이지요

 그렇게 얇은 삶이 바람에 견딘 것을 알고

 손가락으로 당신의 등을 더듬어볼 수 있도록 허락하신 일과

 뒤돌아서서 날 깨우쳐주신 마른 가슴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내가 처음부터 만질 수 없었던 당신의 몸은 바람이 부는 동안

 내가 사는 골목까지 날아와 기다렸지요

 당신은 그때 젖은 시집 속으로 부끄러워하는 몸으로 들어왔지요

 혼자서, 납작하게 살아온 당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줄까요

 불빛처럼 아름다운 당신의 이야기를 밤새 읽다가,

사랑을 이렇게도 말하네요. "당신의 등뼈에 붙은 살이 얼마나 얇은지 알고" 있다고요. 눈물이 나서 그 다음 줄을 읽지 못하겠어요. 나도 누군가의 등뼈를 보았고, 그 누군가는 나의 등뼈를 보았겠지만.

서로 등뼈를 본 사람들끼리는 다 참아주어야겠지요. 더구나 그 등뼈에 붙은 살이 얼마나 얇은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어떻게 바람 부는 시간을 지나 왔으면 그리 마른 잎처럼 야위었을까요. 얼마나 당신을 더듬었으면 그리 닳아졌을까요.

아아 또한 그렇군요. 내가 읽는 책갈피 사이로 들어오기 위하여, 내 방 창틈으로 스며들기 위하여 그리 야위었으리라는 논리. 그것은 생각지도 않게 당신의 등뼈를 처음 본 사랑에게 허락된 유일무이겠지요. 은애겠지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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