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거짓말로 드러난 재벌의 동반성장 약속

재벌 계열사들이 기업 소모성 자재(MRO) 시장에 무차별적으로 진출하면서 중소상인들이 생사의 기로에 내몰리고 있다. 이들이 계열사를 위해 구매를 대행하는 품목은 문구류, 골판지, 베어링, 공구에서 면장갑, 쓰레기통, 대걸레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다. 이들 품목을 구매하면서 재벌 MRO 업체가 부리는 횡포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 납품단가를 후려치거나 단가를 유지하는 대신 수수료를 요구하는가 하면 재계약 시점에 다른 업체의 가격을 제시하며 단가를 또다시 깎는다.

그러다 보니 중소상인은 엄청난 출혈을 감내해야 한다. 한국산업용재공구상협회에 따르면 재벌 MRO 업체가 시장에 진출하면서 중소 공구 제조 업체의 70%가 최근 3년 사이 매출이 30%가 격감했다. 반면 재벌 MRO 업체의 몸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내 MRO 시장 규모는 23조 원으로 이 중 삼성의 아이마켓코리아, LG의 서브원 등 재벌 계열 4개 MRO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 3분의 1 수준인 7조 원에 달한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중소상인의 고혈을 짠 결과다. 이 같은 현실은 재벌들의 동반성장 참여 선언이 거짓말이었음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상생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그 반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비윤리적 행태는 중소상인과 국민을 한없는 절망감에 빠뜨리고 있다.

재벌의 독식은 완성 업체와 협력 업체의 건강한 공존을 파괴하고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이는 우리 기업의 경쟁력 수준을 끌어내리고 부의 편중을 가져와 궁극적으로 국민경제의 건전성 잠식으로 이어진다. 양극화는 재벌 자신에게도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재벌이 이런 사실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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