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숨은 맛 찾아라" 식객 6人이 떴다

인구 250만 명을 자랑하는 대도시에 왜
인구 250만 명을 자랑하는 대도시에 왜 '맛집'이 없겠는가. 식객단은 맛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는 '대구 음식'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맛집을 발굴하기 위해 뛰는 시민들로 구성돼 있다. 이달 16일 식당 초청행사에 모인 식객단. 오른쪽부터 송인재(40), 이명우(45), 이순희(36), 강수진(33), 나옥흠(56), 김규미(24) 씨.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전라도에서 대구를 찾은 한 지인이 "대구 사람은 정말 마음이 너그럽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길 한 적이 있다. 맵고 짠 음식 외에 음식의 깊은맛을 느낄 수 있는 진정한 '맛집'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음식이 간이 안 맞으면 식당 주인에게 항의라도 해야 할 일이지만 대구 사람들은 아무 불만 없이 먹는 걸 보면 정말 다들 성격이 좋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사실 대구는 맛(음식)에 있어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풍부한 재료를 이용해 맛깔스레 차려내는 전라도 한정식과 비교하면 대구는 찜갈비와 따로국밥, 짬뽕 등 맵고 짠 음식이 많다. 물론 요즘 매운 음식이 대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구 250만 명을 자랑하는 대도시에 왜 '맛집'이 없겠는가. 맛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는 '대구 음식'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숨어 있는 맛집을 발굴하기 위해 뛰고 있는 대구시 '식객단'의 음식점 탐방기를 들어봤다.

◆대구의 맛? 식객단이 책임집니다

'식객단'은 대구의 맛집 발굴과 홍보를 책임지는 민간 홍보대사다. 대구시는 지난해 초 맛의 고장 대구를 육성'발전시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음식에 관심이 많은 지역사람들을 모아 첫 출범했다. 1기 식객단으로 위촉된 인원만 329명, 최근 새롭게 위촉된 2기 식객단은 192명에 이른다.

이들은 한 해 동안 대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역의 맛집 정보를 대구푸드(www.daegufood.go.kr) 홈페이지는 물론이고 자신들이 운영하는 블로그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임무를 받았다. 나름 '미식가'여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재미에 푹 빠진 사람들도 있고, 대구의 음식 발전을 위한 '자원봉사'라는 마음으로 접근하는 단원도 있다. 심지어는 마케팅 전문가가 식객단의 멤버로 활동하는 사례도 있다. 식당의 맛과 서비스에 대해 포인트를 잡아주는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구푸드 홈페이지를 통해 포스팅된 블로그 수만도 1천500여 개를 넘어서고 있다. 그만큼 대구 곳곳에 다양한 맛집 정보들을 한데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식객단의 역할 중 하나다. 이렇게 맛집블로거를 시가 직접 나서서 육성하는 경우는 대구가 처음이다. 그만큼 '맛'에 대한 욕심이 간절했기 때문일까? 대구시 식품안전과 김영조 씨는 "시가 나서서 식객단을 꾸리고 위촉장까지 수여하지만 여느 동호회와 마찬가지로 단원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식객단의 왕성한 활동이 다른 시'도에도 많이 알려지면서 벤치마킹하려는 문의전화도 많이 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제까지는 많은 정보의 자료를 축적하는 데 중점을 기울였다면 앞으로는 정보를 좀 더 보기 쉽고 찾기 쉽게 정리하는 방법을 구상 중"이라며 "데이트하기 좋은 곳, 가족식사 하기 좋은 곳, 계모임하기 좋은 곳 등의 식으로 테마별 분류를 해 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객관적인 맛?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맛!

1기에 이어 2기 식객단으로 활동 중인 강수진(33'여'닉네임 토토) 씨는 일주일에 서너 차례 이상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 그는 "직장인이다 보니 매일 점심은 외식으로 해결하게 되는데 가급적 다양한 식당과 메뉴를 선택해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블로그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곁들여져야 한다. 일단 강 씨가 강조하는 것은 "식객단이라는 티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에서는 식객단 활동이 꽤 알려지면서 카메라를 들고 분주히 왔다갔다하는 것을 눈치 채는 순간 음식의 맛과 서비스가 달라지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이다. 강 씨는 "사진을 찍는 것도 조심스레 찍어야 하고, 가게 위치와 간판 등은 들어갈 때보다는 나올 때 찍는 편이 낫다"고 했다.

블로깅을 한다고 해서 늘 좋은 말만 써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맛에 대한 혹평이 있을 수도 있다. 더구나 사람의 입맛은 다 제각각. 내가 맛있다는 음식이 누군가에게는 맛이 없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것이 '입맛'이다. 나옥흠(56'여'명시미) 씨는 "가급적 맛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며 "얼마 전 들렀던 시래기정식집에 대해 맛이 없다는 평가를 올렸는데 다른 식객단 멤버는 '맛이 좋았다'는 댓글을 달아놔서 다시 한 번 찾아서 맛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아예 최고의 찬사도, 혹평도 하지 않는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이명우(45'천지) 씨는 "블로그 수가 늘어날수록 조심스러워져서 이제는 극찬도 아끼게 됐다"며 "'맛이 괜찮았다' 정도로만 표현을 하는 선에서 그치면 나머지는 식당을 찾은 사람들이 스스로 그 답을 찾더라"고 했다.

단원의 수가 많은 만큼 식당을 찾아다니는 이유와 포인트도 제각각이다. 이순희(36'여'푸른시온맘) 씨는 "분식류를 좋아하다 보니 주로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아담한 분식집을 중심으로 블로깅을 하고 있다"고 했고, 김규미(24'여'규요미) 씨는 "남자친구와 데이트 코스로 맛집 탐방을 하다 보니 분위기를 우선하는 경향이 생겼다"고 했다.

◆우리 식당 맛 좀 평가해 주세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식객단의 정례적인 활동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 중 '식당 초청 행사'가 있다. 대구시가 식객단을 운영한다는 사실이 업주들에게 알려지면서 "우리 가게의 맛도 평가해 줄 수 없겠느냐"는 문의가 많아진 것.

처음에는 "과연 이런 홍보성 요청을 받아들여도 괜찮겠나"는 논의가 많았지만 단원들이 회의를 통해 기준을 정하고 초청행사를 식객단 활동의 하나로 반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올 들어서는 1, 2주에 한 번꼴로 초청행사가 열린다.

초청행사 의뢰가 들어왔다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일단 사전 미팅을 가진 뒤 운영진의 심사를 통과해야만 식객단을 대상으로 한 초청행사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 송인재(40'형광파자마) 씨는 "식당에서는 식객단의 블로그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식객단의 취지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사전 미팅을 통해 이를 충분히 설명하고, 가게에 대해 칭찬 일색의 글만 쓸 수 없다는 사실을 미리 알린 뒤 일정을 잡고 있다"고 했다. 대신 이렇게 초청행사를 통해 작성된 블로그는 제목에 '초청행사'라는 말머리를 달도록 규칙을 정했다. 지금은 원하는 식당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6월 말까지 행사가 미리 예약돼 있을 정도.

이달 16일 남구 대명동에 있는 한 스파게티 레스토랑에서 열린 초청행사에는 식객단 7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저마다 카메라와 수첩을 챙겨들고 맛과 서비스에 대한 예리한 평가를 하기 위해 눈을 번뜩였다. 가게 주인은 "스파게티는 식으면 맛이 떨어진다"며 "최고 맛있을 때 맛을 보시고 평가를 해달라"고 했지만, 이들은 일단 블로거로서의 임무인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이 평가하는 것은 '맛'만이 아니다. 위생수준부터 친절도, 서비스, 테이블세팅, 인테리어 분위기, 메인 메뉴부터 결들임 메뉴(사이드 디시)까지 빠뜨리지 않는다. 2기 식객단으로 활동을 시작한 박재현(32'하르흠) 씨는 "늘 식당을 다녀도 대충 배를 채우는 데만 급급했는데 남들에게 추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수저와 그릇의 위생상태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더라"고 했다.

이날 모인 식객단 7명은 '대구 음식이 정말 맛이 없다' '맵고 짠 음식 일색이다'는 편견에 대해 '아니다'고 말했다. 요즘은 전국적인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워낙 많아지면서 음식맛이 평준화되고 있는데다 나름 미식가라고 자부하며 맛집을 순방하는 것을 취미로 삼는 사람들도 늘어나면서 다양하고 특색 있는 음식점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대구라고 왜 맛있는 음식이 없겠습니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요. 그 숨은 맛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저희들의 역할입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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