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이 지나가고 있다. 사춘기 자녀를 둔 가정은 속 끓이는 일이 많다. 가정의 달이고 뭐고 하루라도 조용히 넘어가길 바랄 뿐이다. 사춘기니까 참아야지 하다가도 속에 천불이 난다. 인사를 받아본 지는 까마득하고, 인사 좀 하라고 잔소리할라치면 고개만 까닥거린다.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도 않고, 밥도 혼자 먹겠다고 고집 피운다. 툭하면 짜증이고 화를 낸다. 늘 동공은 풀려 있고 뭘 생각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다. 컴퓨터 화면을 대할 때만 눈빛이 유난히 초롱초롱해진다.
화를 잘 내고 도무지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사춘기. 이런 사춘기를 지내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왜 이런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한 이유도 분명찮다. 일찌감치 별난 행동들을 많이 경험함으로써 뇌를 재조직하고, 나이 들어서 무책임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과정이라는 설까지 나왔다. 이유야 어찌됐건 골치 아픈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수월하게 넘어갈 수는 없을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정환경과 사춘기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유대감이 큰 가정에서 자란 아이일수록 보다 순탄하게 넘어간다는 것. 아울러 시기도 달라진다. 심지어 친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는 소녀들은 보다 이른 사춘기 징후를 보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원인은 확실치 않지만 친아버지가 곁에 없다는 것은 불안정한 가정환경의 상징이며, 이런 이유로 소녀들의 사춘기 징후가 빨리 오는 것으로 진화생물학자들은 보고 있다. 게다가 엄마 혼자 돈을 벌기 때문에 아이와 엄마의 유대도 약해진다. 이런 소녀들은 TV나 컴퓨터 등의 조명에 더 많이 노출돼 사춘기가 빨라진다는 견해도 있다.
일찍 사춘기가 시작되면 여성질환을 앓게 될 가능성도 커진다. 아울러 또래에 비해 우울증을 겪을 확률도 3배 정도로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하지만 부모들이 미리 배려하면 이른 사춘기에서 오는 우울증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사춘기의 특징 중 하나는 공격성이다. 사춘기가 또래보다 너무 빠르거나 늦은 소년들은 공격적이고 반사회적인 성격이 되기 쉽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엘리자베스 수스만 박사팀에 따르면, 소년들에게 특징적으로 많이 분비되는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스트레스 물질로 작용해 생물학적 호르몬 변화를 더 촉진하는 것 같다는 것.
부모가 애정표현을 잘 하지 않고,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을수록 사춘기 자녀가 더 공격적이고 사나워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체적 사춘기를 일찍 겪은 아이들은 비행 행동을 보이기는 했지만 모두 공격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모가 애정표현을 잘 하지 않고, 자녀와의 소통이 부족하고, 자녀와 관련된 지식 수준이 낮으면 아이들은 보다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물론 개인적 차이도 있겠지만 유난스런 사춘기를 맞지 않으려면 가족 간의 유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가족과 함께 식사를 자주 할수록 사춘기 여학생은 일탈행동을 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일주일에 5번 이상 가족과 식사를 한 여학생을 그렇지 않은 여학생과 비교한 결과 흡연, 음주 등 일탈행동을 한 사람 숫자가 절반 정도에 그쳤다.
앞서 연구결과는 대부분 미국, 유럽 등에서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문제는 끈끈한 가족관계가 일탈을 막고, 평온한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
네 명의 자녀를 키운 한 주부가 이런 말을 했다. "첫째와 둘째를 키울 때엔 사춘기를 겪는 그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내가 조바심을 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곁에서 다독여주고 지켜보면 됐을 텐데. 그랬다면 아이도 나도 훨씬 수월하게 지냈을 텐데." 행복은 오히려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마치 곤히 잠든 아기를 바라보는 부모의 첫 마음처럼.
김수용(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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