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스윈델스의 '누더기 앤'은 비밀을 간직한 가족 이야기다. 사우스콧 중학교에 다니는 14살 소녀 마사는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준 옷을 입고 다녀 아이들에게 '누더기 앤'이라고 놀림을 받는다. 아이들은 마사를 쫓아다니며 괴롭히지만, 마사는 마땅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피할 뿐이다. 부모님은 '의로운 사람들'이라는 종교집단에 속해 있어 마사에게 엄격한 규율과 검소한 생활을 강요한다. 마사에게는 친구가 없다. 원래 언니가 있었지만, 부모님은 언니의 존재를 지워버리려고 한다. 하지만 마사는 18살에 집을 나가버린 언니 메리를 그리워한다.
이상한 옷을 입고 다니며, 아버지에게 매를 맞는 마사. 게다가 마사의 집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바로 지하실에 살고 있는 '혐오'. '혐오'는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되는 존재이다. 덕분에 친구나 손님이 절대 오지 못하는 마사의 집은 어둡기만 하다. 그런데 그런 마사에게 기적이 일어난다. 바로 '스콧'이라는 남자 친구가 생긴 것. 스콧은 마사가 처해 있는 불행한 상황을 알아채고 마사를 돕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마사의 집에 드리운 가족의 비밀은 스콧에 의해 점차 드러나게 되고, 마사는 비밀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집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으러 떠난다.
시종일관 가족으로부터 비밀의 대상으로 치부되며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혐오'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언니 메리가 18살에 낳은 아기였다! 아기는 6년 동안이나 지하실에서 우리에 갇혀 짐승처럼 사육당하고, 마사가 밥을 주고 오물을 치우는 역할을 해야 했다. 아기를 낳은 메리는 자신의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입양되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마사의 부모는 미혼의 딸이 아기를 낳은 것이 외부에 알려질까 두려워 지하실에서 사육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스윈델스는 영국의 대표적인 청소년 작가다. 충격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한 그의 책은 가족의 비밀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한 잘못된 종교와 편견이 만들어낸 불행과 고통을 뛰어넘는 아이들의 용기와 우정을 보여준다.
심리학자 세르주 티스롱그는 가족의 비밀에 관한 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정신의학자다. 그는 세계적 만화가 에르제의 만화 시리즈 '땡땡의 모험'을 읽기만 하고도 에르제의 가족 비밀을 밝혀낸 것으로 유명하다. 세르주 티스롱그는 그의 책 '가족의 비밀'에서 가족의 비밀은 삶의 기쁨을 해치고 생각의 자유와 관용 정신, 나아가 자기 자신이고자 하는 용기를 은연중에 파괴한다고 말한다. 비밀을 지키도록 강요받는 과정에서 집단의 구성원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머릿속에서 무의식적으로 거짓을 자행하게 되며, 일찍부터 이중적 사고에 길들여진 사람은 진실과 대면하길 거부하게 된다. 여기서 가족의 비밀은 대개 출생이나 사회적 차별, 죽음 따위와 관련된 것이 많다. 그는 모든 독재 체제가 본연의 정체를 감추고 덧씌우는 거짓이야말로 가족 간에 쉬쉬하는 비밀을 통해 우리가 이미 경험한 메커니즘과 하등 다를 바 없다고 본다. 사소해 보이는 가족 비밀이나 가장 지독한 전체주의에서 똑같은 참담한 결과에 내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부모가 감추고자 하는 가족의 비밀을 인지한 아이는 심리치료를 통해 문제를 해소하지 않는 한 나중에 가서 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때론 감춰진 사실 때문에 성인으로서 생활하는 데에 어려움이 초래될 수도 있으며, 아이일 때 경험했던 비밀스런 상황이 어른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표면으로 돌출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콧이라는 좋은 친구를 만나 용기를 얻게 되고, 가족의 비밀이 초래하는 억압과 학대를 벗어날 수 있었던 마사는 행운아이다. 마사와 스콧 두 사람의 시점으로 번갈아 이야기가 진행되며, 처음부터 끝까지 비밀을 둘러싸고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속도감이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신남희(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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