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의 머리를 깎아줄 때는 빠른 쾌유도 함께 빌어주죠. 단정한 머리를 한 환자가 거울을 보면서 만족해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이·미용 봉사에 나서기를 잘했구나 싶습니다."
계명대 동산의료원 11병동의 자그마한 이·미용실. 이곳에는 11년째 환자 이발봉사를 하는 마음씨 고운 '가위손 부부'가 있다. 이용기능장 남상기(59)'미용사 김혜경(53) 씨 부부다. 남 씨는 주로 머리를 깎고 부인 김 씨는 면도와 머리를 감겨주는 일을 한다. 남 씨는 머리를 깎기 전에는 반드시 가위집 허리띠를 허리에 차는 것이 버릇이 됐다. 이발할 때 허리춤에서 필요한 가위를 뽑아 사용하기가 편리해서다.
"입원환자 중 홀몸노인, 무연고자, 복지시설 어린이, 뇌수술 환자는 무료로 이발을 해줍니다. 또 병원 간병인이 데려온 환자의 이발도 무료입니다."
남 씨 부부는 뇌수술 환자나 중환자는 응급실이나 입원 병실에 출장가서 이발을 해주고, 일반환자는 그들이 운영하는 이·미용소에서 이발을 한다.
"환자 머리를 깎을 땐 환자에게 병명이 뭔지 절대 묻지 않아요. 혹시나 환자들을 불편하게 할까봐서요. 그냥 즐거운 이야기만 할 뿐입니다."
남 씨 부부는 하루 24시간 대기상태에 있다. 영업시간뿐 아니라 퇴근 이후에도 병원 응급실에서 연락이 오면 즉시 달려가 수술 하기 전에 머리를 깎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 씨는 이용소에 있든 집에 있든 휴대전화를 생명처럼 몸에 지니고 있다. 전화가 걸려오면 즉각 알 수 있도록 휴대전화를 가슴 옷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고 했다.
"응급실에 달려가면 머리를 다친 환자의 머리붕대를 제가 가장 먼저 풀어요. 피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머리에 비눗물을 바르고 재빨리 머리카락을 깎아야 하죠. 그것도 전동 이발기계가 아닌 손칼로 직접 머리를 밀어야합니다."
뇌를 다치고 목도 골절된 응급환자의 경우 머리 깎기가 가장 힘든다고 했다. 반듯하게 뉘인 환자의 머리와 스펀지 보호대의 간극은 불과 1㎝. 이곳에 손칼을 넣어 머리카락을 일일이 깎는 일은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고 했다.
"몇 년 전에 개에게 머리를 물린 어린 남자아이가 실려왔어요. 두피까지 일부 벗겨진 상태죠. 두피를 펴가며 머리를 깎아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는 4, 5번 수술만에 다 나았지만 퇴원하는 길에 아버지와 함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왔어요. 얼마나 마음이 뭉클한지."
남 씨는 응급실에서 머리를 깎아주는 도중에 생명이 위급해져 심폐소생술을 하는 환자도 있고 세상을 떠나는 환자도 더러 있다고 전했다.
"병원 입원 때 머리를 깎아 인연을 맺은 환자가 퇴원 후에도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올 때 머리를 깎고 가는 단골 외래환자들도 많아요."
포항에 사는 실명환자인 80대 할아버지는 11년째 자신의 이용소를 이용하고 있고, 부산의 신장이식 수술환자도 두 달에 한 번씩 약타러 올 때마다 이발을 하고 간다는 것. 또 남 씨의 '아이롱파마'에 매료돼 찾아오는 고객도 40, 50명에 이른다고 귀뜀했다.
남 씨 부부 집안은 이'미용 집안이다. 남 씨가 17세 때 가위손 인생을 시작해 43년째이고 부인 김 씨도 미용업 18년째다. 또 결혼을 앞둔 딸 은미(29) 씨도 대구 시내에서 7년째 미용일을 하고 있다. 79세인 김 씨 어머니도 현재 두류동에서 미용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부부와 딸 가위손 3명은 매달 한 번씩 대구 서구 상리동에 있는 복지시설인 소망모자원에 이발봉사를 나가요. 한 번 갈 때마다 20여 명 머리를 깎아주고 있으며 벌써 5년이 넘었어요."
한 달에 2, 3번 동산의료원 정신과 병동을 방문해 4년째 이발봉사를 해오고 있는 남 씨 부부는 앞으로 중증장애인 가정을 방문해 이발봉사를 펼 계획이라는 뜻도 밝혔다.
이발, 미용, 가발, 파마 등 다재다능한 기술을 보유한 남 씨는 2000년 대구시장배 기능올림픽대회에 동메달, 2002년 일본 후쿠오카 전국 기능대회에 장려상을 받았고 전국기능경기대회에 두 차례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남 씨는 현재 한국이용사회 대구중구지회 부지회장, 이용사회 대구협의회 기술강사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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