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종문의 펀펀야구] "표 좀 줄래" 피곤한 선수들

인터넷 예약구매가 늘고 현장판매 수는 줄면서 야구팬들의 입장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3루 내야석 전체가 지정석으로 바뀐 대구구장에서는 빅 매치의 경우 일주일 전부터 준비해도 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표를 구하기가 어려우니 자연 선수들에게까지 표 청탁이 들어온다.

얼핏 선수들에게 쉬운 일 같지만 이는 선수들이 가장 꺼리는 일이다. 선수들은 보통 같은 아파트 주민이나 친한 야구선배, 동료에게 부탁을 받는 편이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사람의 부탁이니 쉽게 승낙은 하지만 순탄할 것만 같은 이 일도 전혀 예상 밖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K선수가 에이스 때 얘기다. 빅 매치를 앞두고 친한 야구선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오늘 경기에 애인 가족과 같이 관람하니 다섯 장을 꼭 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쉽게 생각하고 승낙한 그는 야구장에 도착해 연습 준비를 끝내고 느긋하게 매표실로 갔다. 그런데 벌써 선임 선수들과 관계자 열댓 명이 선점하고 있는 게 아닌가.

겨우 표를 구해 시계를 보니 연습시간이 임박해져 있었고 허겁지겁 달려가 합류해야 했다.

표를 건네기로 약속한 시간은 경기 한 시간 전인 오후 5시 30분. 약속 장소는 본부석 입구였다. 그러나 시간이 다 됐는데도 선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후 6시에는 불펜 투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1분이 10년처럼 느껴지는데 더 기다릴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난감한 입장이 돼 버렸다.

야속한 마음에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선배가 보였다. 달려가 급히 표를 전하고 돌아서는데 아뿔싸 표 값을 받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돌아서 표 값을 달라고 할 상황도 아니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 그날 그는 4회에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인터넷 예매가 일반화된 지금도 선수들의 구매 대행은 여전하지만 많이 줄었다.

지금도 매표실에 자주 들리는 선수는 박석민이다. 친구가 많고 거절을 잘 못하는 탓이다.

배영수나 권오준은 아예 연간 회원권을 여러 장 구매해 가족이나 지인들의 관람을 관리한다.

사실 선수들이 표 부탁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선수들이 구해주는 표를 공짜표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표를 건네도 돈을 주지 않으니 체면상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이런 경우가 자주 발생하니 자연스럽게 꺼려질 수밖에 없다.

테이블석을 가끔 구매하는 오승환과 윤성환은 아예 선물하는 기분으로 전해야 편하단다.

아직도 경기 전 선수가 야구장 앞에서 표를 전달하는 모습은 어느 구장에서나 볼 수 있다.

프로구단 전체로 보면 역시 롯데구단의 선수들이 가장 부탁을 많이 받는 편인데 사직구장 앞에서 표를 건네는 롯데 선수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표를 부탁한 그 누구도 선수들이 경기를 앞두고 얼마나 피곤해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선수들이 차마 거절하지 못할 뿐이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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