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사랑 산사람] 충북 괴산 아가봉

옥녀탕엔 선녀가 노닐고, 기암기봉 노송은 신선들의 놀이터

우아(雅)하기도 하고 아름답기(佳)도 하고…. 산의 용모가 너무 뛰어나서일까. 수시로 그 이름이 바뀌는 산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 많다는 충북 괴산의 한 봉우리를 이르는 말이다. 처음 산지(山誌)에 소개되었을 때는 성재봉, 또는 고습봉이라 불렀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바로 아가봉(雅佳峰'541m)이다.

아가봉은 백두대간이 장성봉 직전에서 막장봉으로 기운을 흘리면서 군자산을 일으키기 전에 옥녀봉과 함께 솟아오른 산이다. 줄기를 뻗치지 못하고 이내 달천(達川)에 그 맥을 가라앉힌 산으로 괴산군 청천면 운교리와 칠성면 사은리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아가봉은 그동안 옥녀봉(玉女峰'599m)으로 가는 길목의 산으로만 기억되어 있었다. 옥녀봉-갈론구곡을 위주로 한 등산로는 교통에 문제가 많았다. 등산시작점까지 대형버스 진입이 어려워 단체 산행을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반대쪽 능선으로 등산로가 속속 개척되면서 꼭꼭 숨겨져 있던 아름다운 바위능선과 기암들이 입소문을 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아가봉도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아가봉의 산행 들머리는 청천면에 속해 있는 '운교2반 신방리'(새뱅이골). 사랑산의 하산지점이자 용추폭포가 있는 사기막을 지나 차량으로 5분여 거리다. 우측에 '아가봉 등산로'라는 작은 이정표가 있고 팻말 우측에는 마을을 알리는 대형 석재로 된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대형버스 진입은 여기까지다.

시멘트 임도를 따라 100여m 들어서면 길은 두 갈래다. 우측으로 접어들어 내리막길로 내려서면 좌우 능선 아래에 새뱅이골이 위치해 있다. 7분여 만에 마을에 도착해 느티나무 못 미쳐 우측 길로 접어든다. 작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길이 나뉘고 계곡 우측으로 들어서자마자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3단 폭포 우측으로 올라서면 또다시 갈림길이 나타난다. 원점회귀형 등산 시 교차되는 지점이다. 좌측 매바위 길을 버리고 우측 '아가봉' 능선으로 접어든다.

◆소나무 숲 곳곳에 탁 트인 전망대

소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길은 느릿한 경사로 걷기에 편하다. 키 작은 소나무와 노간주나무가 많다. 가끔씩 탁 트인 전망대가 나타나 오르막길에 지친 산객들의 호흡을 다듬어 준다. 최고의 전망이라는 신선대까지 세 번 정도의 기막힌 바위 조망처가 나온다. 등산 시작 20분 만에 작은 바위들이 널려 있는 암봉에 닿게 되고, 다시 5분 정도 더 걸으면 가로 2m, 세로 1m, 깊이 1.5m 정도의 바위웅덩이가 나온다. '옥녀탕'이다. 주변이 마사토인데도 불구하고 물이 고여 마르지도 넘치지도 않는 신기한 곳이다. 하필이면 답사 당일 비가 많이 내려 옥녀탕이 '탁녀탕'(濁女湯)이 돼버렸다.

이어 우람한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바위능선이 시원스럽게 연결돼 절로 탄성이 나온다. 10분 정도 오르니 거대한 바위 봉우리가 일행을 반긴다. 아가봉 등산로의 정점인 신선대다. 오름길이 다소 위험해 보이지만 막상 올라보면 생각보다 수월하다. 별천지가 따로 없다. 아름다운 주변경관에 저절로 시 한 수가 떠올려질 것도 같다. 신선대 바로 앞에는 입벌린바위(아가리바위)가 건너다보인다. 마치 먹이를 잡아먹듯 큰 입을 벌리고 있다. 비속어라 표현하기가 무엇한데 사실 '아가리'가 용모에 가장 걸맞은 표현 같다.

세차게 내리던 비도 잠시 숨을 고른다. 사진을 찍으라고 배려해 주는 것 같다. 신선대에서 입벌린바위로 내려서는 길은 두 군데다. 입벌린바위를 바라보며 앞쪽으로 내려서는 길과 처음 신선대를 올랐던 길로 내려선 후 진행하는 길이다. 참고로 신선대를 오르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면 '입벌린바위'를 지나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괴산의 멋진 봉우리들 한눈에

앞쪽으로 내려서서 입벌린바위 앞에서 왼쪽의 경사진 바위를 탄다. 로프가 매여 있어 오르기 쉽다. 입벌린바위 위로 올라가 신선대를 뒤돌아보면 사랑산을 비롯한 주변의 산군이 그림처럼 조망된다. 사자 같기도 하고 거대한 스님의 머리 같기도 한 봉우리 하나를 더 지나면 노송이 줄지어 선 길이 이어지고 매바위 이정표가 있는 주능선에 도달하게 된다. 우측으로 접어드니 아가봉이다. 신선대를 통과한 지 15분여 만이다.

아가봉 정상은 밋밋한 육산이다. 노송과 참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여러 팀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바위 위에는 아가등산회에서 세운 아가봉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하산코스는 두 개다. 오름길로 되돌아가 매바위가 있는 북쪽 능선을 타고 매바위를 지난 다음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서 새뱅이골로 내려가면 된다. 원점회귀형 코스로 하산시간은 1시간이 조금 넘게 소요된다. 다른 하나는 거대한 암봉 하나를 거쳐 옥녀봉을 오른 후 사기막리의 상촌을 거쳐 하촌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일행은 사기막리로 하산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남동쪽 가파른 길을 내려서 작은 봉우리를 지나니 남쪽으로 까마득한 바위 낭떠러지가 나타난다. 웬만한 사람은 모두 겁을 먹을 만큼 가파르지만 막상 다가서니 내려갈 만하다. 로프가 매여 있고 발 디딜 곳도 있어서 천천히 이동하면 그리 어렵지는 않다. 각(角)을 달리해서일까, 내려서서 뒤돌아보면 암봉이 더 우람하게 보인다. 상촌과 갈론으로 가는 이정표를 지나 아가봉을 출발한 지 45분 만에 옥녀봉에 올랐다. 간단한 기념 촬영 후 안부에 내려서니 갈림길이다. 직진하는 갈모봉능선과 우측 상촌으로 하산하는 하산 길은 로프로 막아 놓았다.(2017년까지 자연휴식년제로 묶여 있다.) 우측으로 20여 분 내려서니 상촌리다. 상촌리에서 사기막리까지는 도보로 20~30분 정도 걸린다. 사기막리에 매점과 팔각정 정자가 있어 정자에서 늦은 중식을 해결한다.

◆화양'선유동'쌍곡 등 유명 계곡들 도열

괴산 아가봉은 북으로 군자산과 쌍곡계곡, 남으로는 화양구곡과 선유동계곡, 그리고 서쪽으로는 아름다운 산군의 파노라마를 즐길 수 있다. 신선대, 입벌린바위, 매바위 등 기암기봉이 즐비하다. 대부분 산길은 기암기봉을 올려다보며 산행이 이루어진다. 맑은 날이면 군자산, 백악산 너머로 속리산이 눈에 들어오고, 청화산, 조항산, 대야산의 머리도 보인다. 비가 많이 내려도 등산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다. 크게 위험한 곳이 없어 사계절 등산이 가능하다.

본인의 페이스와 취향에 따라 등산로를 선택할 수 있다. 새뱅이골을 원점회귀하려면 2시간 30여 분 정도 걸린다. 옥녀봉을 연계하면 3시간 30분 정도, 선유구곡이 있는 갈모봉을 연계하면 5시간 이상을 상회한다. 어느 등산로든 하산지점에 계곡이 있어 산행 중 흘린 땀을 식힐 수 있다. 특히 사기막으로 하산할 시 괴산의 용추폭포와 연리목(사랑나무)도 덤으로 볼 수 있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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