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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지는 중장년 티켓 파워…"극장·콘서트 객석, 우리가 접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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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써니' 관객 40대 이상 3분의 1…386 베이붐 세대 문화

예상하지 못했던 영화
예상하지 못했던 영화 '써니'의 돌풍 뒤에는 중장년층이 있었다.

'늦바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 강한 늦바람이 불고 있다. 진원지는 중장년층이다. 10, 20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트렌드를 중장년층이 만들어가고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영화 '써니'의 돌풍 뒤에는 중장년층이 있었다. 인문학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주인공들도 중장년층이다. 중장년층이 몰고 온 변화의 바람을 취재했다.

◆중장년층이 만든 깜짝 스타 '써니'

올 상반기 흥행 1위를 차지한 영화는 '써니'다. 5월 4일 개봉된 '써니'가 6월까지 불러모은 관객수는 591만3천940명. '써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캐리비안의 해적:낯선 조류' '쿵푸팬더 2' '트랜스포머 3'의 잇단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고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써니'는 개봉과 함께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뒤 순위가 하락했다 개봉 6주 만에 다시 1위에 오르는 특이한 흥행곡선을 그렸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영화를 잘 보지 않는 40, 50대 관객들이 대거 몰리면서 흥행 순위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지난달 맥스무비가 집계한 예매관객 비율을 보면 20대가 27%, 30대가 33%인 반면 40대 이상 관객은 34%를 차지했다. 영화의 주관객층이 10, 20대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써니'는 일곱 명의 여고 동창생들이 중년의 나이에 다시 만나 학창시절을 추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재가 '칠공주'로 진부하고 '티켓 파워'를 가진 톱스타가 출연하지도 않지만 인기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 투자 및 배급을 맡은 CJ E&M는 "칠공주 이야기를 무겁지 않고 유쾌하게 풀어내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고, 1980년대 정서가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해 중장년층을 모은 것이 흥행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또 '써니'에 앞서 올 2월 개봉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도 중장년층의 응원에 힙입어 개봉 한 달여 만에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관에 부는 중장년층 바람은 중장년층 관객 증가와 맥이 닿아 있다. 국내 최대 복합상영관 체인인 CGV가 2005년부터 올 5월까지 회원들(멤버십카드 소유자)의 연령대별 구성과 연령대별 입장권 구매 패턴을 분석한 결과, 가장 주목할 만한 증가세를 보인 관객층은 40대였다. 전체 회원 중 4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5년 11.6%에서 올 5월 말 19.1%로 늘었다. 같은 기간 50대 이상 비율도 3.5%에서 7.3%로 증가했다. 반면 20대는 43.2%에서 32.2%로 줄었다. 티켓 구매에서는 중장년층의 위력이 더욱 컸다. 회원에게 판매된 티켓 가운데 40대 관객층이 구매한 비율은 2005년 7.1%에서 올해 22%로 3배 넘게 늘었다. 하지만 20대는 60.6%에서 35.4%로, 10대는 8.7%에서 3.9%로 하락했다.

◆출판'공연계에도 중장년층 바람

출판계에서도 중장년층의 힘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인문학을 위기에서 구해낸 '정의란 무엇인가'는 출간 11개월 만인 올 4월 밀리언셀러(출고 기준)에 등극했다. '인문학 서적은 5만 부만 팔려도 대박'이라는 출판계에서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셈이다. 1981년 베스트셀러 집계가 시작된 이후 인문서 단행본으로 100만 부 이상 판매된 책은 '반갑다 논리야'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등에 불과했다. 또 장하준 교수가 지난해 10월 출간한 신자유주의 비판서적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도 출간 40일 만에 판매고 20만 부를 돌파하며 인문학 열풍을 이어갔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돌풍은 30, 40대 때문이다. 이들이 주요 독자층을 형성하면서 책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후 입소문이 나면서 20대와 여성들까지 독자층으로 편입됐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펴낸 김영사는 "출간 초기에는 30, 40대 남성들이 주독자층이었지만 이후에는 20대와 여성 독자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또 교보문고는 "지금까지 베스트셀러들은 주로 20, 30대, 그중에서도 20대 여성들이 주독자층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주독자층은 30, 40대 남성, 특히 40대 남성이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출판계에 부는 중장년층 파워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달 14일 교보문고가 발표한 도서판매 동향에 따르면 10~30대 비율은 낮아지고 40~60대 비율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별 도서판매 점유율을 보면 10대의 경우 2009년 8.9%에서 2010년 8.2%, 올 상반기에는 7.6%로 떨어졌다. 20대도 2009년 34.8%에서 2010년 33.4%, 올해 32.6%, 30대는 2009년 27.5%에서 2010년 27.1%, 올해는 26.9%로 하락했다. 하지만 40대는 2009년 21.3%에서 2010년 23%, 올해 23.7%, 50대는 2009년 5.8%에서 2010년 6.6%, 올해 7.2%, 60대는 2009년 1.7%에서 올해 2%로 상승했다.

공연계에도 중장년층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올 초 대학로에서 공연된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는 객석의 70% 이상을 중장년층이 점령했다. 정보석'조재현 등이 출연한 이 연극은 삶과 사랑,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풀어내 어른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올봄 서울 두산아트센터 무대에 올려진 음악극 '천변카바레'는 관객의 50% 이상을 중장년층이 차지했다. 또 7080 콘서트와 세시봉 열풍도 향수를 즐기려는 중장년층의 문화욕구가 커지면서 나타난 현상 중 하나다.

중장년층 티켓 파워가 거세지면서 이들을 잡기 위한 공연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올 상반기 가수 배호를 주인공으로 한 '천변카바레'뿐 아니라 '옛사랑'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을 작곡한 고 이영훈의 노래들로 구성된 뮤지컬 '광화문 연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엄마의 모습을 그린 뮤지컬 '엄마를 부탁해' 등이 잇따라 무대에 올려졌다.

◆뮤지컬 '맘마미아' 이후 곳곳에서 분출

중장년층 파워는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중장년층의 티켓 파워가 발휘된 적은 여러 번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05년 공연된 뮤지컬 '맘마미아'다. 당시 '맘마미아'는 공연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중장년층을 공연장으로 이끌어내며 전국적으로 '맘마미아'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대구에서는 2개월여 동안 장기 공연되면서 유료관객만 6만5천여 명을 그러모았다. 유료관객 가운데 40대 이상이 60%를 차지해 중장년층이 '맘마미아' 흥행 성공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뮤지컬 '맘마미아' 열풍은 영화로도 이어졌다. 2008년 개봉된 영화 '맘마미아'는 젊은 시절 아바 노래에 매료됐던 40, 50대 관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관객 460만 명을 불러모으는 대성공을 거뒀다. 2009년 개봉된 영화 '워낭소리'도 중장년층의 티켓 파워를 확인시켜 준 사례로 꼽힌다. '워낭소리'가 다큐 영화로는 처음으로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한 것은 적극적으로 문화를 향유하는 '4050 컬처족'의 힘이 컸다.

2005년 '맘마미아' 대구공연을 기획했던 배성혁 예술기획 성우 대표는 "맘마미아는 공연문화의 지도를 확 바꾼 계기가 됐다. 맘마미아 이후 중장년층의 티켓 파워가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맘마미아 이후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도 활발해졌다. 맘마미아 이전에는 마케팅의 주타깃이 대학생과 20대 직장인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장년층이 흥행 보증수표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어 중장년층을 끌어들이려는 마케팅이 적극적으로 펼쳐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계 블루오션으로 부상

중장년층이 문화계 큰손으로 부상한 이유에 대해 공연기획사 최원준 파워포엠 대표는 "요즘 중장년층은 과거의 중장년층과 마인드가 다르다. 나이가 들어도 젊게 살려는 의지가 강하다. 경제적 여유를 가진 이들이 문화 소비에 눈을 돌리면서 막강한 파워가 형성됐다. 특히 40, 50대 여성들이 계모임이나 동창회 때 공연장을 찾아 문화적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고 해석했다. 또 그는 "386세대들의 중장년층 편입도 중요한 원인이다.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직접 체험한 386세대는 2030세대 못지않게 왕성한 호기심을 가진 세대다. 학력과 구매력, 문화소비욕구 등을 두루 갖춘 386세대들이 40대로 접어들면서 중장년층 파워의 핵으로 자리 잡았다"고 덧붙였다.

배성혁 대표는 학습 효과와 베이비붐 세대에 주목했다. 그는 "공연도 본 사람이 본다. 처음 볼 때 어색한 공연문화도 자주 접하면 익숙해지고 재미를 붙이게 된다. 공연문화에 노출되는 중장년층이 늘어나면서 중장년층의 티켓 파워도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며 "베이비붐 세대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고도성장을 이끈 주역으로 자부심이 강하다. 이들이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문화 소비를 선택하면서 자연스럽게 티켓 파워를 갖게 됐다. 베이비붐 세대들의 은퇴가 본격화되면 중장년층 파워는 한층 더 강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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