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여는 대구는 역대 개최 도시 중 가장 덜 알려진 편이다. 1983년 첫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열렸고 3회 대회까지 4년마다 열리다 이후 2년 간격으로 개최되면서 1987년 로마(이탈리아), 1991년 도쿄(일본), 1993년 슈투트가르트(독일), 1997년 아테네(그리스), 1999년 세비야(스페인), 2003년 파리(프랑스), 2007년 오사카(일본), 2009년 베를린(독일) 등에서 열렸다. 모두 유럽 국가들의 수도이거나 주요 도시이고 일본의 수도와 제2의 도시로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곳들이다.
1995년 대회 개최지인 스웨덴의 예테보리나 2001년 대회 개최지인 캐나다의 에드먼턴이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덜한 도시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테보리는 세계육상선수권 개최 2년 전에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열어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국제적 지명도를 높였고 토론토, 캘커타, 밴쿠버 등 캐나다의 잘 알려진 도시들에 가렸던 에드먼턴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를 계기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이러한 도시들에 비해 대구는 국제적으로 낯선 도시이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 외국인들에게 잘 알려고 있고 제2의 도시인 부산만 해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대구는 내륙에 위치해 국제적 소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최근에는 장기 경기 침체에 빠져 인천에 도시 규모가 밀리면서 재도약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계육상선수권을 유치한 것도 세계화 시대에 도시 브랜드를 높여 살아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첫 대회가 열리면서 바로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유럽의 뜨거운 육상 열기 덕분이었다. 북미와 일본에서 열린 3차례 대회를 제외하고 모두 유럽에서 열린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헬싱키가 첫 대회 개최의 영광을 안은 뒤 2005년 대회까지 유일하게 두 차례 개최한 것은 핀란드가 전통적인 중장거리 강국이었던 점이 작용했다. 핀란드는 1920년대 세 번의 올림픽에서 9개의 금메달과 3개의 은메달을 딴 전설적인 선수 파보 누르미를 배출한 이후 뛰어난 중장거리 주자들을 배출해 왔다. 핀란드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의 백인 선수들이 오랫동안 육상을 지배해 왔다. 그러나 북중미와 아프리카의 뛰어난 흑인 선수들이 그 자리를 대체했고 이들은 계속해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는 그 정점에 있는 선수다. 2007년 오사카 세계선수권 때만 해도 주목받지 못했던 볼트는 당시 100m, 200m, 400m계주에서 3관왕을 차지한 타이슨 가이(미국)와 그의 라이벌 아사파 파월(자메이카)에 가려 200m와 400m계주에서 은메달을 따는 데 그쳤다. 그러나 주법을 가다듬은 그는 이듬해 베이징올림픽에서 100m, 200m, 400m계주 우승을 차지했고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 역시 3관왕을 이어나갔다. 그는 이때 100m에서 9초 58의 경이적인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볼트와 장대높이뛰기의 '미녀 새'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 110m허들의 '황색 탄환' 류샹(중국), 여자 높이뛰기의 블랑카 블라시치(크로아티아),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남아공) 등 육상 스타들이 대구에 온다. 남자 마라톤의 지영준, 남자 세단뛰기의 김덕현, 여자 멀리뛰기의 정순옥 등 한국의 기대주들도 세계의 벽에 도전한다. 딱 한 달 뒤 대구스타디움에서 땀과 눈물, 사연이 서린 세계 최고의 위대한 경주가 펼쳐지게 된다.
대구 대회는 육상 불모지인 아시아의 도시에서 중앙 정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치러진다는 점에서 오사카 대회와 비슷하며 여러모로 비교된다. 예산 부족으로 부대 행사가 많이 열리지 못했고 흥행에서도 실패한 오사카 대회에 비해 대구는 더 잘 치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대회가 성공리에 마무리된다면 대구의 도시 브랜드는 물론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대회 흥행이 관건이다. 예매 입장권이 많이 팔렸지만 대회 조직위원회는 경기장이 가득 채워지지 않을까 염려하며 시민들의 애향심과 애국심에 호소하고 있다. 경기장을 많이 찾아 대회 성공의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완성시키는 것이 대구 시민들과 우리 국민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
金知奭(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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