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요즘 TV, 볼 게 없다…시청자들 "전파 낭비" 비난

히트 프로그램 하나 나오면 너도나도 '베끼기'…케이블TV도 영화 등

"하루 종일 채널 재핑(Channel zapping)을 해도 볼 게 없습니다."

올여름 처음으로 주말을 집에서 뒹굴뒹굴하면서 보낸 김모(37'대구시 서구 내당동) 씨는 토'일요일 이틀 동안 거의 10시간 이상을 TV를 봤지만 볼 게 없어 짜증만 났다. 채널을 수백 번 돌려보았지만 케이블 TV 프로그램마저 재탕 삼탕이며, 뭐 하나 진득하게 놔둘 프로그램이 없었다. 다만 중간중간에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의 수영 경기를 보는 것이 유일한 볼거리였다. 하필 이 주말에는 프로야구 경기도 없었다.

실제 김 씨가 23, 24일 TV 프로그램을 분석해 보니 지상파 정규방송은 낮 시간부터 저녁 시간 전까지 오락프로나 드라마 재방송이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케이블 채널은 아예 대놓고 오락 프로그램과 요즘 대세인 경연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있었다고 한다. 주말 오후 시간대의 음악 방송은 아예 아이돌 가수들의 독무대라 40대 이상 시청자들은 아예 열린 음악회나 콘서트 7080, 전국노래자랑, 심야시간대 음악프로그램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김 씨는 특별히 즐겨보는 드라마도 없는 시청자는 아예 자신이 보고픈 비디오나 DVD를 빌려서 보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독백을 했다. "아휴~, 엄지 손가락만 아프고."

◆지상파 방송의 주말 프로그램 현주소

24일 지상파 3사의 오후 방송을 보면 이렇다. KBS1은 전국노래자랑 이후에 한국인의 밥상(재), 낭만을 부탁해(재), 역사스페셜(재), 대하극 광개토태왕(재), 그리고 10분짜리 뉴스 이후에 동물의 왕국, 열린 음악회로 이어진다. KBS2는 남자의 자격(재), 개그콘서트(재), 주말극 사랑을 믿어요(재)에 이어 해피 선데이가 나온다. MBC는 그나마 재방송은 별로 없다. 하지만 역시나 볼 게 없었다. 대구대 총장기 전국고교 검도선수권대회, 대구뉴스, TV 전국기행, 우리들의 일밤 그리고 뉴스데스크에 이어 주말극이다. SBS/TBC는 놀라운 대회 스타킹(재), 수목극 시티헌터(재), TBC 뉴스, SBS 인기가요, 일요일이 좋다, 그리고 8시 뉴스다.

시청자의 볼 권리는 아예 없는 듯하다. 케이블로 돌려도 역시나 기대할 것은 없다. 일주일에 수차례 방송되는 이미 본 영화나 수십 번, 수백 번 우려먹는 경연 및 오락 프로그램뿐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경연 프로그램이 방송의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시청자들이 짜증이 날 정도로 모든 게 순위를 정하는 프로그램 일색이다.

'슈퍼스타 K'라는 케이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이후에 지상파 방송인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경연 대세에 기름을 부었다. 이젠 모든 방송이 이런 포맷으로 도배가 되고 있다.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가 등장해 연예인들과 피겨선수들이 순위 대결을 펼치는 '키스 앤 크라이', 배우 지망생들의 자질을 평가하고 순위를 정하는 '코리아 갓 탤런트', 연예인들이 춤 대결을 펼치는 '댄싱 위드 더 스타', 유명 요리사인 에드워드 권을 내세운 요리 경연 프로그램, 슈퍼모델 이소라가 진행하는 모델 지망생들의 경연 프로그램 등이 채널을 돌릴 때마다 나온다.

회사원 이민정(34'여'대구시 중구 대신동) 씨는 "한 번 인기나 유행을 타면 모든 것이 그 방향으로만 흐르다 보니, 대중문화 다양성 측면에서 볼 때 너무 아쉽고, TV를 볼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든다"고 비판했다.

◆'유행'대세'만 추종하는 TV프로그램

"벌써 오디션 프로그램에 염증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슈퍼스타 K'나 '나는 가수다' 등의 첫 시발점이 된 프로그램은 평가할 만하지만 다른 프로그램은 최소한의 독창성이나 참신함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또 이 유행의 물결이 지나가면 또 다른 대세 프로그램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겁니다."

대경대 연극영화방송예술학부 김건표 교수는 오디션이나 경연 일색의 현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실제 우리나라 방송의 현실을 보면 한 번 히트한 프로가 등장하면 이후 이를 모방한 예능 프로그램이 쏟아진다. 그리고 후속 예능 프로가 '아류'라는 비판을 무릅쓰고라도 그 포맷을 따라간다.

지난해 '슈퍼스타 K'가 공전의 대히트를 치자, 지상파 방송이 자존심을 접고 같은 틀의 심사위원 멘토 시스템을 도입한 '위대한 탄생'으로 평균 이상의 시청률을 올린 바 있다.

실제 지상파 방송의 관계자는 "시청률 부담을 안고 예능이나 오락 프로를 제작하다 보면 자연히 히트한 프로와 비슷한 방향으로 가게 된다"고 털어놨다.

최근 방송 3사의 봄 개편 이후 남발하고 있는 경연 및 오락 중심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벌써 식상함을 주고 있으며, 동시에 전파 낭비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표절 시비도 일고 있다. KBS 2 '불후의 명곡2'는 방송 초 '나는 가수다'와 흡사해 '아예 그대로 베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렇듯 경연'오락 일색의 최근 방송 흐름에 대한 비판이 많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다 보니, 아예 이런 걱정 없이 집에 TV가 없는 사람들이 맘 편하다는 말이 귀에 와 닿는 요즘이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23, 24일 지상파 및 케이블'위성 TV 프로그램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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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전체 방송횟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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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 프로그램 40여 회

경연 프로그램 20여 회

드라마 30여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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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및 다큐멘터리 5,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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