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의 꽃은 호스피스 의사가 아니라 자원봉사자다. 병동이 처음 개설된 뒤 모 단체에서 목욕봉사를 하러 왔다. 당시 우리는 60세가 넘은 어르신 봉사단만 몇 명 있을 뿐이었다. 힘이 많이 드는 목욕봉사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단체가 고마웠다. 그들이 하는 목욕봉사는 환상적이었다. 링거 주사를 맞는 부위를 비닐과 반창고로 밀봉해 물에 젖지 않게 하는 방법이라거나 일어나지 못하는 환자를 척척 옮기는 것이 신기했다. 집에서 몇 개월 동안 목욕은커녕 간단한 샤워조차 못했던 환자들은 목욕을 좋아했다.
그러나 이 단체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친절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들 말에 협조하지 않는 보호자가 있으면 목욕을 건너뛰기도 했다. 나중에 보호자 할머니가 불평하는 것을 듣고 우연히 알게 됐다. 말할 힘이 없는 환자는 말을 못하고, 보호자들은 행여나 목욕을 해주지 않을까봐 말을 안 했던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 단체는 자신들이 믿고 있는 특정 종교인을 우리 병동에 파견하기를 요구했다. 병동에는 그들이 믿는 종교에서 이미 봉사하러 오는 좋은 성직자가 있었다. 단지 종파가 달랐다. 나는 종파가 뭔지도 몰랐고, 단지 봉사를 통해서 종교적 이익을 찾는 그들이 미웠다.
목욕봉사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영적 돌봄을 하시는 성직자를 그만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내가 목욕봉사를 하는 한이 있어도 그건 아니다 싶어 거절했었다. 그 뒤로부터 이 단체에서는 목욕봉사를 하러 오지 않았다.
'환자를 위해서 타협했어야 할까?' 하고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래도 궁하면 통한다고 했을까? 어르신 봉사단이 목욕봉사를 시작했다. 환자는 힘없이 축 처지기 때문에 말라 보여도 무게가 꽤 있다. 얇은 침대시트로 환자를 감싸고 병상침대에서 목욕침대로 옮기는 과정은 꽤나 힘을 필요로 했다. 청장년도 하기 힘든 일을 환갑이 훨씬 넘으신 어르신 봉사자가 척척 해 나갔다.
사람은 자신보다 남을 위해서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집에 가면 자식들에게 대접받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디서 그렇게 힘이 나오시는지 신기할 뿐이었다. 콩죽 같은 땀을 흘리면서 목욕봉사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앞서 모 단체로부터 받은 상처가 치유되어 갔다.
호스피스는 사람이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이다. 병(病) 때문에 물 한 모금 마실 기력이 없는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이 물을 떠먹이는 작업이 호스피스이다. 그러나 그 일을 하는 사람 자체가 모두 고귀하지는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한 사건이었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댓글 많은 뉴스
대통령실, 추미애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원칙적 공감"
[단독] 국민의힘, '보수의 심장' 대구서 장외투쟁 첫 시작하나
李대통령 지지율 54.5%…'정치 혼란'에 1.5%p 하락
정동영 "'탈북민' 명칭변경 검토…어감 나빠 탈북민들도 싫어해"
지방 공항 사업 곳곳서 난관…다시 드리운 '탈원전' 그림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