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표준이 바뀌어 가는 현실 속에서 통일 문제를 보는 역사인식이 너무 약합니다. (중략) 통일에는 전통 천하질서 속의 통일이 있고, 20세기 냉전이 깨질 때까지의 근대 국제질서 속의 통일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복합 네트워크 통일이라는 새로운 시각의 통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근대적인 의미의 통일, 남과 북의 상부구조의 만남에 환호한다면 아마 21세기 입장권 중에 반쪽 입장권밖에 못 산 결과가 될 것입니다. (남북통일을 이룰지는 몰라도 시대의 낙오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21세기는 복합 네트워크적인 통일을 추구해야 합니다. 남북이 하나되는 과정에서 주변의 동아시아 국가를 비롯해 지구적인 차원과의 연계, 또 남북관계와 국내 관계의 네트워킹 등 범지구적 그물망 속에서 통일을 보아야 합니다." -220쪽, 221쪽-
이 책은 남북통일을 위한 논의에 새로운 시각을 불어넣기 위해 기획된 좌담회 내용을 묶은 것이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를 주축으로 역사학자 노태돈(서울대 국사학과), 도진순(창원대 사학과)이 한편을 이루고, 국제정치 역학과 한반도 정세와 통일을 연구해온 서울대 외교학과 하영선 교수를 주축으로 사회과학자 고유환(동국대 북한학과), 조동호(이화여대 북한학과)가 짝을 이뤄 12시간 동안 벌인 통일 좌담이다.
6명의 학자들은 1970년대 이후 극적으로 변한 정서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이면서도 근본적으로 혁신적인 통일방안이 제시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이들은 '햇볕정책'도 '강력한 제재'도 북한과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진단한다.
학자들은 현대적이고, 바람직한 통일방안을 찾기 위해 고구려, 백제, 신라의 고대 삼국통일에서부터 구한말을 거쳐 현대 분단체제에 이르게 된 역사적 과정을 성찰하고, 복합적이고 새로운 네트워크 통일안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전통적인 동아시아 질서의 통일이나 서양이 가져다 준 근대적 통일만으로 21세기에 번영을 누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통일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통일이며, 어떤 역할을 위한, 혹은 어떤 번영을 위한, 어떤 방식의 통일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학 쪽에서 붙들고 있는 민족일체성 회복론은 버려질 수 없는 것이지만 이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많이 위축되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민족일체성 회복 혹은 같은 민족이라는 이해만으로 통일을 이루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 남북통일 문제는 결국 국제관계 속에서 풀 수밖에 없겠다는 것이 현실적이요 지배적인 의견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략)" -68쪽-
6명의 토론자들은 통일을 위한 방안으로 '북한을 개혁개방시켜 성장기반이 구축된 국가로 만드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남한이 번영 속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경제협력을 통해 차츰 통일을 이룩해 나가야 한다'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다. 특히 이들은 복합네트워크 통일안에 큰 관심을 표명한다.
'복합네트워크안'이란 미국과 인접 그물망을 치고, 중국과 연결 그물망을 쳐서 전통적 한미관계는 물론 점차 영향력이 증대하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시각이다. 냉전시대에는 이른바 '양다리 걸치기'가 불가능했지만, 21세기 복합시대에는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양다리'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생을 위한 복합네트워크 구축으로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모두 한반도 통일이 자국의 이익에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책은 경제외교나 군사외교뿐만 아니라 결혼 네트워킹, 유학생, 상인 등을 통해 중국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고, 북한과는 남북경협을 통해 지속적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쌓아감으로써 통일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252쪽, 1만5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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